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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출퇴근 20주년 기념일(2016. 5. 16) 출근길...계양산 고개를 넘으며
 자전거 출퇴근 20주년 기념일(2016. 5. 16) 출근길...계양산 고개를 넘으며
ⓒ 심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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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 내내 내리던 장대비가 예상보다 빨리 그쳤다. 월요일 아침 6시 눈을 뜨니 파란 하늘이 빼꼼 보인다. 반가웠다. 버스를 이용하지 않고 여전히 자전거를 타고 출근할 수 있어서 기뻤다. 길이 어느 정도 말랐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어느 때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두 바퀴 출근길에 나섰다. 오늘이 바로 자전거로 출퇴근을 시작한지 딱 20년 되는 날이다.

1996년 5월 16일 목요일에 나의 세 번째 승용차가 출고되었다. 영업사원으로부터 새 차 열쇠를 받아들어 첫 주유까지 마치고는 아내에게 달려갔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8개월 지났으니 이 차를 몰고다닐 때도 되었다고 말했다.

나도 차 욕심이 없는 편이 아니었지만 더 이상 미련을 가져서는 결심이 쉽게 흔들릴 것만 같았다. 아내에게 차를 넘긴 뒤, 곧바로 동네 자전거 판매소로 향했다.

괜찮은 결심

그 때부터 내게 두 바퀴 친구, 자전거가 생겼다. 단순히 출퇴근 목적이었다. 당시 살았던 인천 서구 가정2동 상가건물 2층 전셋집에서 내가 근무하는 학교까지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으니 어렵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 이전까지 내 차를 이용하여 출근하는 동료 교사들에게는 미안한 소식을 전해야 했지만 축하와 격려의 말씀을 들었다. 그래서 더 용기를 냈던 것 같다. 아니 더 늦기 전에 시작하자는 오기가 발동했다고 해야 하나?

내게 31살이라는 시절이 있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그것은 괜찮은 결심이었다. 주차 고민, 시간 고민, 기다리는 고민 등을 하지 않아도 됐다. 무엇보다 혼자라서 좋았다. 처음에는 뒤뚱거리며 어릴 적 몸이 기억하고 있던 균형 감각을 찾아내는데 좀 어려움을 겪었지만 며칠만에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가정오거리에서 서구청으로 이어진 승학 고개를 넘고, 거기서 공촌사거리까지 이어진 작은 고개를 또 하나 넘어야 하는 출퇴근 코스였다. 다행히 곧장 뻗은 코스여서 적응하는데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가뜩이나 두꺼운 허벅지가 조금씩 단단해지는 것을 느낄 수도 있어 좋았다.

그리고 이듬해 고개를 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가까운 아파트로 이사갔다. 창문 밖으로 목적지가 보일 정도였으니 이 때부터 약 5년 간은 사실상 자전거 출퇴근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기에 부끄러울 정도였다.

그러다보니 객쩍은 혈기가 드러나기도 했다. 인천 송도에 있는 인천상륙작전기념관에서 열린 통일안보교육 학생 지도를 위해 버스를 타지 않고 자전거로 왕복하기로 결심한 것. 약 20km의 거리, 내 출퇴근 길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거리였다. 차도는 대충 알지만 처음 자전거를 이용해야 하는 그 거리를 어떻게 갈 수 있을까 걱정했다.

제2경인고속도로 시작점 위를 넘어가는 능해고가를 자전거로 넘었다는 사실이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그래서 당시에 마주 오는 승용차 운전자들이 손가락질을 했나보다. 진땀 나는 미소가 다시 떠오른다.

"멈추어 보며 느끼라"는 가르침

2002년에 우리 가족은 인천 계산동으로 집을 옮겼다. 자연스럽게 출퇴근 거리도 늘어났다. 편도 약 7.6km의 거리, 평균 소요 시간은 25~30분이다. 지금까지 비나 눈이 내리지 않는 출근일이면 어김없이 자전거를 타고 하루 평균 1시간 두 바퀴 굴리기 페달 운동을 하는 셈이다.

중간에 계산동에서 인천 서구 공촌사거리로 이어진 계양산 고개가 놓여 있다. 완만한 오르막 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처음에는 다리가 휘청거릴 정도로 발길질이 쉽지 않았다. 지금은 아예 변속 기어가 없는 픽시 자전거를 이용할 정도이니 이 고개를 넘어서 출퇴근한 14년의 보람이 느껴지기도 한다.

계양산 고갯길 군부대 철조망에 기대어 자라고 있는 탱자(꽃)
 계양산 고갯길 군부대 철조망에 기대어 자라고 있는 탱자(꽃)
ⓒ 심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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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출퇴근은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리던 나를 천천히 걸어가게 만들어주었다. 아예 멈춰서 생각하게 만들어 주어서 고마울 따름이다. 내게 그 가르침을 준 것은 다름아닌 자전거였으며 그 친구 나무와 꽃들이었다.

자전거 도로가 준비되지 않은 일반 보도에는 여러가지 모양의 블록이 흙을 덮고 있는데 그곳이 일정 시간이 지나면 들썩인다. 가로수 뿌리가 들고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람들이 얼마나 생각이 모자란 존재인가를 기막히게 가르쳐준다.

그저 보기 좋으라고 아무렇게나 막 심어 놓은 가로수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한탄한다. 자전거로 그 위를 달리면 가로수 뿌리들이 들고 일어나 따끔한 가르침을 주는 것처럼 고스란히 그 충격이 엉덩이까지 전달된다.

그보다 더 큰 가르침은 나무와 꽃, 풀들이 속삭이는 이야기들이다. 자동차를 타고 휙휙 지나가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느린 교통 수단이지만 나무와 꽃, 풀들의 속삭임은 자전거 속도조차도 빠르다고 핀잔을 준다. 아예 내려서 걷거나 멈추어 보며 느끼라고 손을 내밀기 때문이다.

승용차로 출퇴근 할 때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 내 삶에 펼쳐졌다. 똑같은 길을 14년째 자전거로 넘나들고 있으니 거의 비슷한 자연 현상을 보고 느꼈다. 그래서 해마다 이맘 때면 어떤 나무들과 어떤 꽃들이 향기 품은 바람을 일으키는지 잘 안다. 아니, 잘 안다기보다 그저 그 바람을 품에 안는다. 그리고 초록 풀들이 먼지 낀 눈을 맑게 씻어내린다.

전에는 진달래와 철쭉도 구분하지 못했다. 자전거 덕분에 나무와 꽃들, 풀들의 색채가 언제 어떻게 다른지 배우고 또 배운다. 그것도 모자라 페달에서 발을 내리고 나란히 걷는 것도 정말 좋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그래서 지금은 자주 멈춰서 사진기를 꺼내든다. 인간이 만든 철조망보다 더 날카로운 가시를 내밀고 있는 탱자나무에서 저렇게 아름다운 꽃이 핀다는 사실도 배웠다.

더 고개를 숙이고 앉으면 쇠별꽃이 작지만 고운 미소를 띠고 기다린다는 것도 깨달았다. 심지어 그들은 가을에도 겨울에도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자전거가 그렇다. 내 솔직한 두 다리 힘으로 웬만한 곳에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쉽고 편하게 가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자전거 덕분에 그런 길이 재미없다는 것을 알았다. 내 무거운 몸과 축구 때문에 무릎이 조금 망가지기는 했지만 아직 자전거 페달을 휘저을 수 있음에 감사하며 몇 년 더 두 바퀴 친구와 함께 달리고 또 걷고 싶다. 20년 동안 내 곁을 지켜준 두 바퀴 친구 고맙소.


태그:#자전거, #출퇴근, #20년, #나무,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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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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