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성희롱은 다양한 장소에서 일어난다. 학교, 대중교통, 길에서도 성희롱이 일어나곤 한다. 그 중에서도 많은 성희롱이 일어나는 곳은 회사다. 회사는 직급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고 권력관계가 조직에 반영되어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권력을 가진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성희롱을 가하기 쉽다.

<예민해도 괜찮아> 표지
 <예민해도 괜찮아> 표지
ⓒ 북스코프

관련사진보기

직장 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성희롱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 소송을 준비해야 한다면 무엇이 필요한지 알기 쉽지 않다. 처음 성희롱 피해를 당한다면 더욱 더 그렇다. 내가 지나치게 예민한 탓에 선의를 오해한 것은 아닐까, 나만 생각이 이상한 것은 아닐까 걱정하기 쉽다. 이런 피해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 있다.

<예민해도 괜찮아>는 성희롱과 성폭력을 주제로 하는 책이다. 현재 법조인으로 활동 중인 이은의 변호사가 자신의 경험과 법적인 조언을 담아 썼다. 협박성 문자나 데이트 폭력과 같은 민감한 문제에 대처한 이야기부터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비판까지 성에 관한 이야기를 폭넓게 다뤘다.

저자인 이은의 변호사는 원래 국내 대기업에서 근무하던 회사원이었다. 그곳에서 성희롱 피해를 겪었고, 피해 보상을 받아내 화제가 되었다. 사내 성희롱 피해자가 폐쇄적인 조직 문화나 가해자의 보복이 두려워서 피해를 감내하는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인데, 주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소송을 통해 승리했기 때문이다. 퇴직한 후에는 로스쿨에 진학하여 현재는 성범죄 피해자들을 돕는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예민해도 괜찮아>의 1장과 2장에서는 성희롱과 데이트 폭력에 관한 이야기와 조언을 다룬다. 3장에서는 여성이 겪는 차별의 문제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분석한다. 마지막 4장에서는 이은의 변호사 본인이 살면서 느낀 점들을 정리한 글을 읽을 수 있는데, 주로 피해자에 대한 동조의 중요성과 자아존중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저자는 사회나 회사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성희롱과 강제추행 문제에는 권력관계가 개입되어 있다고 본다. 가해자는 장난스럽게, 혹은 친근함을 느껴서 하는 행동이라고 하더라도 실은 권력과 지위가 그 배경에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보는 것이다. 권력관계가 뒤집어진 경우에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은 꽤 설득력이 있다.

생각해보면 직장이나 학교에서 일어나는 성희롱, 강제추행같은 일들은 성적 문제가 아니라 권력관계의 문제다. 요즘엔 우월한 지위를 내세워 아랫사람을 인격적으로 모독하는 '힘희롱'이라는 말도 등장했다. 쉽게 말해 자신보다 상대적으로 약자인 이들에 대한 배려와 존중, 예의의 문제다. 하급자가 상급자를 희롱하거나 침해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갑으로부터 을을 향해 발생하고, 을은 저항하기 어려우니 자신이 느끼는 불쾌함조차 자기검열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회 구성원은 갑을을 둘러싸고 을의 시선이 아닌 갑의 시선에 감정이입해 이러한 사건을 바라본다. -74P

단순 나열식 성희롱 교육으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저자는 일시적인 가해자 중심의 교육은 직장 내 성희롱 해결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말한다. 권력관계에 따라 아랫사람을 대하고 예의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갑들에게 단순한 설명은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성희롱 금지 자체를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운 금기로 여길 가능성도 있다.

저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동체 문화에 대한 성찰과 활발한 소통이 필요하다고 본다. 권력관계 안에서 상대적인 갑들이 을과 소통과 공감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책 전체에 걸쳐서 서로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강조되어 있다. 그리고 스스로의 마음에 귀 기울일 것을 권한다. 내가 존중받아야 하는 동시에 나도 나를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우지 못한 을들은 결국 존중할 줄 모르는 갑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성희롱과 성폭력에 대처하는 방법 이외에도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저자가 로스쿨을 다니면서 겪은 술자리 성희롱 사례와 여성 변호사로서 근무하면서 겪은 부당한 차별에 대한 이야기도 실려 있다.

저자는 경험에서 나온 다양한 사례들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어려움에 대해 상세히 서술한다. 그리고 책을 읽는 독자가 모두와 잘 지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부당한 다수에 동조하지 않기를 바란다.

책의 분량은 260p 정도로 읽기 쉽도록 정리되어 있다. 성범죄 피해자를 돕는 변호사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인생을 살아온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저자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생각하면서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책에 쓰인 문장의 의미가 무겁게 느껴진다.


예민해도 괜찮아 - 불쾌한 터치와 막말에 분노하는 당신을 위한 따뜻한 직설

이은의 지음, 북스코프(아카넷)(2016)


태그:#성희롱, #데이트 폭력, #성범죄, #이은의, #권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전화해주실 일 있으신경우에 쪽지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