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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200미터다. 단식농성장에서 한국공항공사 건물까지. 김포공항 청소노동자들이 한국공항공사 버스정류장 뒤편에 스티로폼을 깔고 앉았다.

청소노동자들 가운데 한 명인 공공비정규직노조 손경희(51) 서울경기지부 지회장은 이 곳에서 단식농성을 한 지 4일 째(9월 2일 기준)다. 버스를 타고 내리는 시민들과 등을 마주하고 있지만 시민들의 눈길은 농성장에 한시도 채 머물지 않았다.

단식 농성 중인 손 지회장의 바람... "관리자가 바뀌어야 한다"

 삭발에 이어 무기한 단식농성을 시작한 손 지회장.
 삭발에 이어 무기한 단식농성을 시작한 손 지회장.
ⓒ 황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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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오전 11시쯤 농성장을 찾았다. 가장 먼저 만나 인터뷰 한 사람은 김포공항에서 청소노동자로 일한 지 30년 된 손 지회장. 그는 "처음 해보는 단식농성이라 힘들다"라고 말했다. 그의 표정은 담담했다. 두렵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쉽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고 각오하고 시작했다"라고 답했다. 그는 "지회장 자리가 쉽지 않으리라는 걸 예상했다"라면서 "그래도 하루종일 다른 노조원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힘이 돼 준다"라고 덧붙였다.

손 지회장이 바라는 건 현재 재직 중인 관리자가 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가 '청소노동자 인권 유린'의 중심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가 나가야 조합원들이 안정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손 지회장은 "그분이 10여 년 넘게 여기서 근무 하셨는데 그분이 나가지 않고서는 절대 개선이 안 된다고들 믿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너무 우리를 심하게 탄압했기 때문에 관리자가 바뀌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번 농성은 임금 문제가 걸린 투쟁이기도 하다. 손 지회장은 "우리가 한번에 정부 지침대로 임금을 책정하라는 게 아니다, 그런데 대화를 안 해주고 있다"라면서 "용역회사는 이 일을 해결하지 못한다, 원청에서 우리를 인간 취급해서 만나 대화를 좀 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끝까지 "대화가 제일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3년 내내 최저임금... '낙하산' 관리자는 월급 받고 놀다가"

 한국공항공사 건물이 바로 보이는 버스정류장 뒤편에 위치한 단식농성장.
 한국공항공사 건물이 바로 보이는 버스정류장 뒤편에 위치한 단식농성장.
ⓒ 황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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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농성 중이라 체력이 부친 손 지회장을 대신해 정진희 공공비정규직노조 서경지부 사무국장과 인터뷰를 이어갔다.

단식 농성까지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묻자 정 사무국장은 "안 그러면 3년 내내 최저임금을 받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청소노동자들이) 3년짜리 계약을 맺는데 계약 자체를 3년 내내 최저임금으로 설계해놨다"라며 "지금 당장 정부 지침대로 하든, 당장 안 되면 내년에라도 뭔가 공항공사에서 개선할 수 있도록 입장을 달라는 게 조합원의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정부 지침은 시급 8200원 정도다. 그런데 공항공사가 설정한 원가에 용역회사 낙찰률을 적용하고 보면 청소노동자들에게 돌아오는 돈은 월 126만 원이다. 딱 최저임금이다. 노조가 원하는 것은 이러한 '원가 설계 문제 개선'이다. 하지만 공항공사는 답이 없다.

공항공사 퇴직자들이 청소 용역업체 관리자로 내려오는 문제도 있다고 한다. 정 사무국장은 "용역 업체엔 본부장이 있고, 소장이 있는데, 보통 200~300명짜리 용역업체도 소장 한 명만 둔다"라면서 "그런데 여기는 현재 120명밖에 없는데 소장 둘에 본부장 하나, 총 3명이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본부장이랑 소장 한 명은 공사 출신"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공사 퇴직은 60세, 용역회사 퇴직은 65세인데 58세쯤 퇴직해 5~7년 정도 월 300만~400만 원을 받으면서 놀다 간다"라고 주장했다.

"본부장 옆자리 비워놓고... 소장은 젊은 미화원 보내기도"

정 사무국장의 지적은 계속 이어졌다. 그는 "더 문제인 것은 이들이 내려와 자기들만의 왕국을 만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소장들이 본부장한테 술 접대를 하고 반장들도 거기에 줄을 서면서 미화원들은 숨 죽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본부장 옆자리를 비워놓고 소장이 예쁘고 젊은 미화원들을 앉혀 술을 따르게 한다"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어디 놀러갈 때는 "나와서 춤춰보라"라고 하면서 점수까지 매긴다고 한다.

지난 12일 김포공항 청소노동자들은 한국공항공사 정문 앞에서 용역업체 관리자들의 상습적인 성추행 등을 고발한 바 있다. 당시 '여성 노동자를 무릎에 앉히거나' '기습적으로 혀가 입 안에 들어왔고' '가슴에 멍이 들 정도로 성추행을 당했다' 등의 증언이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증언은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지난 8월 26일 파업 이후 달라진 것은 있다. 공항공사 측은 앞으로 공사 퇴직자들이 용역업체 관리자로 가는 걸 배제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노조는 공항공사와 다른 입장이다. 지금 남아 있는 관리자들이 앞으로 3~5년 정도 더 일을 할 것이기에 문제가 되는 관리자들을 당장 업무 일선에서 배제해달라는 것이다.

휴게 공간 문제도 개선의 움직임은 있다. 하지만, 현장에 있는 이들은 다른 결의 이야기를 했다. 정 사무국장은 "저희랑 의논을 안 하다 보니 엄한 데 의자를 갖다놓고 개선했다고 한다"라며 "지금 쓰고 있는 장소를 잘 활용하면 좋은데 그걸 우리랑 논의하면 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김포공항 청소노동자들은 화장실에 딸린 창고에서 고작 30분 휴식을 취한 게 전부였다.

"우리의 가치를 존중받고 싶다... 우리도 인간이다"

농성장에서 50대 후반 청소노동자 세 명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이들이 이곳에서 일한 지는 적게는 5년에서 많게는 10년이다. 중년의 여성, 비정규직, 청소노동자의 삶은 어떨까. 이들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우리 사회 중년 여성들은 힘이 없다고 얘기를 해야 되나요. 벌어야 하고 사회 진출도 해야 하는데도 발맞춰 나갈 수 없는, '억눌림의 50대'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 억눌림이 폭발한 거예요.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분노를 표출할 수 없었는데 이제 조금이라도 표출하고 우리의 권리를 찾으려 해요."

"진짜 가슴이 너무 아파요. 자꾸 기자분들이고, 누구고 와서 말로만 그러잖아요. 우리를 도와줘야 하잖아요. 지금 말할 수가 없잖아요. 우리의 가치를 존중받고 싶어요. 하나의 인간으로서, 단지 미화원이라고 해도 '밑에서 일하는 존재'가 아니라 '똑같은 인간'이 되고 싶은 거죠."

"10년 동안 자부심을 갖고 일했어요. 천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랬는데 너무 차별 대우를 하는 거예요. 조금만 움직여도 점수를 매기니까. 대합실에서 계속 쳇바퀴 돌 듯 죽어라고 하는 거잖아요. 끝날 때까지 마대 걸레질 하면서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우리 같은 사람한테 삿대질하고 면박 주고 '돈 더 받을 거면 대학 나오지 그랬냐'라고 해요. 나는 너무 몰라요. 노조가 생기고 이번에야 알았어요. 딸들은 (나에게) '너무 아프게만 하지 말라'고 해요."

누군가는 곡기를 끊고, 누군가는 애타는 목소리로 말한다. "우리도 똑같은 인간"이라고, "대화 좀 하자"라고. 농성장에서 한국공항공사까지 거리는 약 200미터. 몇 분이면 걸어가 문을 두드려 만날 수 있는 거리지만, 김포공항 청소노동자들은 농성장에 묶여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대답 없는 한국공항공사를 앞에 두고서 말이다. 이 200미터 거리는 좁혀질 수 있을까. 답은 한국공항공사에 달려 있다.

한편 공사 측은 노조의 요구에 대해 "현재 김포공항에서 일하고 있는 청소노동자는 국내 최고 수준의 급여를 받고 있다"면서 "계약 자체도 공사 서울지역본부에서 용역업체와 체결해 해결에 직접 나서기 어렵다"고 밝힌 바 있다.


태그:#공항, #노조, #파업, #청소노동자, #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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