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박경림이 27일 오전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난 25일을 끝으로 박경림이 <두시의 데이트> DJ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그 이틀 후인 27일 오전 11시. 3년 3개월 만에 평일 낮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녀를 만났다. ⓒ 이정민


박경림만큼 '연예인'이라는 단어와 어울리는 사람이 있을까? 데뷔한 지 어느덧 18년. 그녀는 방송인, 연기자, 가수, MC, DJ, 뮤지컬 배우 등 '연예인'의 하위 목록에 포함되는 거의 모든 분야였다.

그런 박경림과 가장 인연이 깊은 매체를 꼽으라면 단연 라디오다. KBS 2FM <볼륨을 높여요> 청취자 캠프에 참가했다가 제작진 눈에 띄어 방송과 인연을 맺었고, MBC 표준FM <별이 빛나는 밤에> <두시의 데이트>를 통해 '방송인'이 됐다. 이후 TV로 무대를 옮겨 활발하게 활동을 펼쳤지만, 라디오와의 인연은 끊이지 않았다. '영혼의 단짝' 박수홍과 함께 맡았던 <FM 인기가요>를 시작으로, <심심타파> <별이 빛나는 밤에> <두시의 데이트> 등 여러 프로그램의 DJ를 맡으며 특유의 편안한 진행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라디오 #두시의 데이트

지난 25일을 끝으로 박경림은 MBC <두시의 데이트> DJ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그 이틀 후인 27일, 3년 3개월 만에 평일 오전 11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녀를 만났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생방송 준비에 한창 바쁠 시간이었다.

"보통 이 시간이면 녹음하러 가거나 생방송 준비하는 시간이죠. 근데 다행히 일이 많아요. 어제도 11월에 시작하는 공연 회의를 했고, 오늘은 이렇게 인터뷰가 있네요. 민준이(아들)가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이라 아이에게도 더 신경 써야 하는데…. 민준이가 라디오 그만둔다는 이야기에 이제 매일 놀아줄 수 있느냐고 묻더라고요. '미안하지만 조금 더 기다려야할 것 같다!'고 얘기했어요(웃음)."

프로필 상 데뷔작은 <이본의 볼륨을 높여요>(1995)지만, 그녀가 방송인으로서 첫 고정 출연한 프로는 당시 이문세가 진행하던 <두시의 데이트>(1997)였다. 데뷔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된다는 건 그리 흔한 케이스가 아니다. 박경림 개인에게도 의미 있었을 <두시의 데이트>를 떠나는 마음이 어찌 아쉽지 않겠느냐만, 그녀의 반응은 오히려 "지금까지 해올 수 있어서 꿈같았다"였다.

"처음 맡을 때부터 제가 맡기에는 큰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어요. 정식으로 '짠!' 하고 들어간 게 아니라 DJ 자리가 공석이 됐을 때 대타 DJ를 하다 맡게 된 거였잖아요. 주어진 시간만큼 최선을 다하자, 당장 내일이라도 그만둘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임했는데 하다 보니 제가 진행했던 프로 중 제일 오래 했네요(웃음). 늘 과분하고 즐겁고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 잘 마무리하게 돼 다행이에요."

#평범한 감성 #비범한 열정

 방송인 박경림이 27일 오전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학창시절 직접 박수홍 팬클럽까지 만들었을 만큼 열성적인 팬이었던 박경림은 결국 박수홍과 열애설까지 났다. 로맨스 소설에서나 볼 법한 스토리. 덕후들의 우상이자 '성덕(성공한 덕후)'으로 추앙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 이정민


박경림을 잘 표현하는 수식어는 '남다른'이다. 고등학생 시절 다짜고짜 일면식도 없던 이문세를 찾아가 "데뷔시켜 달라"고 했다가 "대학부터 가라"는 이문세의 조언에 입시를 마치고 다시 찾아가 결국 그의 도움으로 데뷔하게 됐다는 일화만 보아도 절대 평범하지 않다. 게다가 그렇게 데뷔한 지 만 3년 만에 최연소 연예대상 수상자까지 됐다. '만 23세에 연예대상 수상'이라는 기록은 방송 3사 모두에서 여전히 깨지지 않고 있다. 꿈을 목표삼아 돌진해서 곧 이루고야 마는 그 열정과 추진력은 그야말로 남다르다.

또 다른 일화. 학창시절 직접 박수홍 팬클럽까지 만들었을 만큼 열성적인 팬이었던 그는 결국 박수홍과 열애설까지 났다. 로맨스 소설에서나 볼 법한 스토리. 덕후들의 우상이자 '성덕(성공한 덕후)'으로 추앙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재치 있게 "열애설은 낸 거죠!"라고 그녀가 받아쳤다. 박경림의 진정한 남다름은 이처럼 자신이 속한 세대 이슈에 공감하는 '평범한 감수성'을 바탕으로 '비범한 열정'을 발휘해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데 있다.

"어려서부터 꿈을 꼭 붙들고 있지 않으면 산산조각 날 거라는 생각을 항상 했어요. 저는 처음부터 관심 받던 사람이 아니었어요. 관심의 중심인 사람은 그게 부담이겠지만 전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으니 반대로 끊임없이 꿈을 얘기하고 다녔죠.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친구들이 노트를 사면 맨 앞에 제 이름으로 사인하고 다녔어요. '자 OO씨, 행복하세요~ 박경림' 이런 식으로(웃음). 그리고 '언젠가 내가 유명한 사람이 되면 너네에게 보물이 될 거야'라고 했는데 지금까지 그걸 갖고 있는 친구들이 있어요. '어디 네가 되나 보자'라는 마음으로 갖고 있었대요. 하하하!"

그녀는 "꿈을 자꾸 떠들면서 책임지는 삶이 익숙하다"고 했다.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았던 자신의 꿈에, 스스로 부담을 지우는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나와의 약속'은 곧 '세상과의 약속'이다. 인기 정점에 있던 때 훌쩍 미국 유학을 떠났던 일도, 이런 박경림의 삶을 생각해본다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리고 그녀는 엄마다. 올해로 3년째 이어오고 있는 '박경림의 토크콘서트'는 바로 엄마로 사는 일상에서 착안한 일종의 치유 행사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산후우울증을 겪었어요. 감당할 수 없는 복잡 미묘한 감정에 휩싸였을 때, 어느 곳 하나 말할 데가 없더라고요. 말하면 괜히 걱정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무시 받을 것도 같고. 여러 감정이 들었죠. 내 또래에 나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은 다 이렇겠구나 싶었는데, 다른 이들도 주위에 말 못해서 서로 모르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위안을 얻는다 하더라고요. 그렇다면 공연장으로 옮겨보면 어떨까 싶었죠. 그게 여자들, 엄마들을 대상으로 한 토크콘서트를 시작한 계기예요. 같이 이야기하면서 나만 이러고 사는 게 아니구나, 다 그러고 사는 구나 이야기하고 시원하게 같이 울고 욕하고 하는 거죠."

#공부 #공감

 방송인 박경림이 27일 오전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경림이 조심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 섣불리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다. 그녀는 지금도 끊임없이 대중을, 사람을 공부한다. ⓒ 이정민


'공감'을 내세웠지만, 사실 연예인으로 살아온 그녀가 일반인들을 얼마나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이 물음에 박경림은 "경험은 다르지만, 태어나 죽을 때까지 겪는 감정의 폭은 다 똑같지 않겠느냐"며 반문했다. "상사에게 평가 받고 스트레스 받는 일반인이나, 일반인에게 평가 받고 스트레스 받는 연예인이나, 결국 타인에 의해 겪는 희로애락을 감당해야 하는 사실은 같지 않냐"는 것이다.

"어릴 때 데뷔하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람들이 뭘 원하고 생각하는지 보다, 내가 어떻게 재미있게 잘할까 하는 게 더 급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리저리 부딪치며 살다보면 결국 다 같이 같은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죠. 세상물정 몰라서 뒤통수도 맞고, 사기도 당하고, 그러면서 배우고. 그건 사회 초년생들도 비슷하지 않나요?"

박경림의 공감 능력은 같은 부분을 찾음과 동시에 다름을 인정하는 데서 나온다. 그녀가 조심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 섣불리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그래서 그녀는 지금도 끊임없이 사람과 대중을 공부한다. 영화, 연극, 드라마도 꾸준히 보며 인터넷 기사에 달리는 댓글도 꼼꼼하게 읽는 편이다. "악플과 선플이 섞여있지만 읽다보면 대중의 중론을 어느 정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가장 좋은 공부법은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방송을 하면 할수록 느껴요. 공감이 참 어렵고 대중이 참 어렵구나. 어릴 땐 뭣 모르고 위로랍시고 했던 말들이 누군가에게 더 큰 상처를 줬을 수도 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부끄러워지더라고요. 그런데 전 누구든 언제든 어떤 이야기든 가능해야 하는 직업이잖아요. 라디오가 매일 두 시간 동안 청취자분들과 이야기 할 수 있는 공간이었고, 이젠 또 다른 장소에서 이야기해야죠. 그래도 사람에 대해 다 알진 못하겠지만 끊임없이 알고자 하는 거죠."

#도전 #여성

몇 년 전부터 박경림은 각종 영화 행사의 진행을 맡고 있다. 배우들의 긴장을 풀고 기자들, 관객들과 소통 창구를 터주는 게 그의 주 임무. "주어진 기회에 최선을 다했더니 계속 이어지더라"며 박경림은 "최선을 다했지만 기회가 이어지지 않았던 게 바로 영화 출연"이라며 호쾌하게 웃었다. 2002년 개봉한 코미디 장르 <재밌는 영화>에서 북파공작원으로 등장한 사연을 들며 반 농담으로 영화 출연에 대한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이내 새로운 영역의 도전을 이야기했다. 오디오북이란다.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하고 친근한 그녀의 목소리지만, 오디오북 내레이션이라니, 순간 웃음이 터졌다. "왜 내레이션은 이병헌씨처럼 목소리 좋은 연예인들의 전유물이어냐 하느냐"며 그녀가 유쾌하게 반박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 거친 음성도 들어줘야 사회에 대한 편견도 없어진다"면서.

웃음이 끊이지 않던 인터뷰 중 이 대목에서 박경림은 진지해졌다. 11월 16일부터 20일까지 진행할 '토크콘서트' 이야기다. 무대 공연은 방송과 성격이 달라 무대가 익숙한 개그맨 출신 예능인이나, 가수들이 아닌 다음에야 도전하기 쉽지 않다. 박경림은 "어려워도 해봐야 뭐가 어려운지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알지 않겠나"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단다.

실은 이미 1999년 겁 없이 토크콘서트에 도전한 전력이 있다. 대학로 소극장에서 연 토크콘서트가 흥행했고, 이후 그 유명한 <착각의 늪> 앨범을 내고 내친 김에 전국투어까지 진행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치 않고 편하게 받아내는 박경림의 장기가 십분 발휘될 때가 바로 이같은 무대 공연이다. 방송은 불특정 다수가 보는 매체이기 때문에 안전하고 보편적인 내용을 추구하지만, 공연은 관객 한 명 한 명의 리액션에 따라 분위기가달라지기 때문에 관객과 함께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다는 거다. 하지만 그만큼 돌발상황도 많다는 이야기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적은 없을까?

"벌써 20년이잖아요! 방송하면서 이런저런 일을 겪어서 웬만한 일에는 당황하지 않아요! 그리고 제 성격의 장점일 수도 있는데 전 첫 만남의 어색함을 즐겨요. 그 순간이 지나면 다시 못 느끼는 느낌, 눈빛이 있거든요. 공연 시작 때도 관객과 밀당 하는 느낌, 재밌으시라 말을 꺼냈는데 아무도 웃지 않을 때 그 당혹스러움도 좋아요(웃음).

제가 방송 일을 리포터로 시작해서 그런가. 누구를 만나도 당황하지 않을 담대함을 갖게 된 거 같아요. 시골에 가서 마이크를 들이 밀면 '니가 누군데?' 하는 분도 계셨죠. 결국 끝까지 마음 문을 열지 않고 '싫다, 너 꺼져라' 하는 분이 계실 수도 있지만, 그럼 제가 꺼지면 되는 거 아니겠어요? 하하하."

#함께 사는 삶

 방송인 박경림이 27일 오전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유쾌하고 발랄했던 박경림이 아닌, 한결 차분해진 모습의 그녀가 보였다. 결혼과 출산을 겪으며 변한 것인지 묻자, "그것도 고정관념이다, 그저 기력이 쇠해졌을 뿐"이라고 받아 웃음을 자아냈다. ⓒ 이정민


박경림은 지난 시즌 토크콘서트 <여자의 사생활> 수익금 전액을 미혼모 사업에 기부하기도 했다. 여자들의 콘서트로 얻은 수익을 그대로 여성에게 건넨 셈이다. 그녀의 일관성이 돋보인다. 현재 박경림의 화두 역시 여자와 아이들이다. 국제구호단체 '세이브 더 칠드런'과 10년째 관계를 맺고 있고, 여성 관련 사업 역시 진행 중이다.

"대한사회복지회 미혼모 사업에 기부하게 됐어요. 기저귀와 분유도 좋지만 이 분들에게 필요한 건 자립이라고 봐요. 직접 저희가 찾아가서 자립 교육에 도움을 드리고 있어요. 금전 기부뿐 아니라 직접 만나서 함께 나눠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언뜻 유쾌하고 발랄했던 박경림이 아닌, 한결 차분해진 그녀가 보였다. 결혼과 출산을 겪으며 변한 것인지 묻자, "그것도 고정관념이다, 그저 기력이 쇠해졌을 뿐"이라고 받으며 여지없이 특유의 웃음을 낸다. 하지만 박경림은 분명 깊어졌다. 유학 생활 중 복귀 관련 기사에 달린 '안 왔으면 좋겠다' 같은 악성 댓글에 크게 상처받고 많이 울기도 했지만, 지금의 그녀는 마음의 폭과 너비가 깊어져 있었다.

"어떤 모습이든 10년을 보여드리면 진심이 통한다고 생각해요. 제 인간관계를 두고도 '박경림은 이럴 것이다' 오해도 많았어요. 속상하기도 했지만, 10년 정도 지나니 달라지더라고요. 사람들이 저를 곡해해도 '10년 정도 변하지 않으면 알아주시겠지' 이런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특유의 매력인 발랄함과 도전정신은 잃지 않고, 경력만큼 신중함과 책임감을 더한 박경림. DJ 자리를 내려놓은 그녀가 어떤 도전으로 그 빈틈을 채워갈까. <두시의 데이트>를 떠난 아쉬움보다, 앞으로 보여줄 새로운 행보에 유쾌한 기대감이 들었다.  


박경림 두시의데이트 토크콘서트 라디오 박수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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