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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법은 고용 불안정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을 더 큰 불안으로 이끄는 제도입니다."

지난 2월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 천주교 서울교구 노동사목위원회 등 3대 종교 단체가 서울 명동 천주교서울대교구청에서 연 '종교가 바라본 파견법'을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 토론자로 참여한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실천위원 법상스님이 하신 말씀이다.

이날 3대 종교인들은 토론회를 통해 파견노동이나 하청노동은 노동자들을 더욱 큰 불안으로 이끌고 공정사회를 해치는 제도라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 한국의 산업 가운데 파견노동(하청노동)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곳이 바로 조선소다.

정부가 매년 발표하는 300인 이상 사업장의 고용형태 공시제도에 따르면 조선업의 경우 간접고용 노동자 비율이 무려 66.5%에 달해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안전한 배를 만들어야 할 조선소가 가장 불안한 노동, 가장 불공정한 노동으로 배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파견노동, 가장 불안하고 불공정한 노동

현시한 대우조선노동조합 위원장과 변성준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 위원장이 용접작업복을 입고 지난 7월 15일 오후 거제 고현 수협마트 앞에서 열린 '조선업 살리기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현시한 대우조선노동조합 위원장과 변성준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 위원장이 용접작업복을 입고 지난 7월 15일 오후 거제 고현 수협마트 앞에서 열린 '조선업 살리기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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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천주교서울교구 노동사목위원회, 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는 2014년부터 3대 종교 노동자 지원 연대 활동을 공동으로 해 오고 있다. 케이블방송, 삼성백혈병, 동양시멘트, 유성기업, 세월호 기간제 교사, 파견법 문제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종교간 연대 활동을 해 왔다.

당사자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겠지만 노동 관련 종교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고민하면서도 한편으로 현실의 벽에 답답해하기도 하였다. 특히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이후 해고 노동자 및 그 가족의 죽음에 대하여 종교인들의 책임 또한 가볍지 않다는 생각을 해 왔다.

또 한편으론 한진중공업,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는 전 국민에게 사회적 교훈과 약속을 가져다주었다. 해고의 책임을 노동자들에만  전가하지 말라는 것. 해고자들에 대한 회사 뿐 만 아니라 국가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는 것. 구조조정이 정말 필요하다면 해고를 먼저 상정하기 전에 같이 살아 갈수 있는 길을 모색하자는 것. 해고 노동자의 죽음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 타살이라는 것이다.

종교인들은 구의역 사고를 비롯한 비정규 노동자의 죽음에 대하여서도 같이 아파하고 추모하고 행동하면서 돌아가신 비정규직 노동자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 자신, 내 자식, 내 자매형제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해고의 문제, 비정규 노동자의 차별 문제에 대하여 사회적 각성과 공동의 행동,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해고와 차별에 대한 종교계의 공동 행동

그러던 올해 초 우리는 남녘 끝에 있는 조선소에서 대량해고 소리가 들려왔다. 수 만 명의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이 소리소문도 없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수 만 명이 해고의 위기에 처했는데 거제와 울산, 목포의 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우려와 관심은 미미하다는 사실에 놀랐다.

조선소 구조조정에 대한 언론보도에는 임원과 분사, 정규직 노동자 감원에 대한 소식은 있지만, 70%의 노동을 담당하고 있는 파견(하청)노동자들에 대한 소식은 전혀 없다. 그들이 말하는 구조조정 숫자에도 하청노동자들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하청노동자들은 소위 저항할 조직도 없고, 기댈 언덕도 없다보니, 마구잡이 해고를 시켜도 된다는 인식을 기업과 정부도 하고 있는 것 같다.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고 하면 그것으로 해고당하는 하청노동자들, 실업수당도, 퇴직금도 근로계약서도 없는 비정규 조선 노동자들. 짧게는 일 년  길게는 십년 이상 일해도 유령 취급당하는 사람들, 개인과 가족의 생존권이 하루아침에 사라져도 어느 회사, 정부도 남의 일처럼 보고 있는 이들이다.

정부와 자본의 명백한 책임과 잘못임에도 최고의 피해를 비정규 노동자에게만 전가하고 있는 반인간적인 모습과 그들의 수십만 가족 구성원의 생존에 대하여 아무런 대책조차도 갖고 있지 않은 이 자본과 정부의 야만에 대하여, 누군가는 소리를 들어보고, 그들의 얼굴이라도 쳐다보고 마주 앉아주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3대 종교 노동-인권 위원회는 지난 6월에 조선소 하청노동자 대량해고 주제로 토론회를 갖고, 주변 같이 고민하고 있는 분들과 머리를 맞대기 시작했다.

조선소 하청노동자들과 머리를 맞댔다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을 만났다. 몇 차례의 토론을 했고, 머리를 맞댔다. 가만히 있어서는 안된다고 마음을 모았다. 이어 9월 6일 61개 사회단체가 모여 '조선소 하청노동자 대량해고 저지 시민사회대책위원회'를 발족하였다.

그리고 9월 28~29일 시민대책위는 울산, 거제를 내려가 하청노동자와 대화하고, 새벽 6시 출근길에 10월 29일 하청노동자 대회를 알리는 선전물을 나누어 주었다. 스님들은 옆에서 목탁과 북을 치며 하청조선 노동자들에게 용기의 마음을 내시라고 염불을 했다.

종교는 물론 인간 정신과 마음의 깨끗함과 인류 평화, 평등을 위하여 수행과 기도를 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한편으론  사회적 약자를 위하여 종교의 존재이유도 있는데 만일 그 약자들의 고통과 불평등이 반인간적이고 편파적이고, 선하지 못한 부분에 의하여 나타난다면 당연히 옳지 못한 부분에 대하여 지적도 하고 필요하다면 동참해 그 고통을 없애는데 마음과 몸을 합해야 한다. 

특히 한국사회 불평등의 대명사인 비정규 노동자 문제에 대하여서는 더욱 그렇다. 하물며 수 만 명의 힘없는 조선소 하청 노동자의 해고 사태에 종교는 침묵해서는 더 더욱 안 될 것이다. 이번 하청노동자 수 만 명 대량해고는 큰 사태이다. 정규직 노동자가 일시에 수 만 명 해고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면 아마 한국이 연일 집회와 파업으로 시끄러웠을 것이다.

어쩌면 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는, 수십만 노동자와 가족의 생존권 파괴 행위이다. 그러나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해고에는 조용하기까지 하니 기가 막힐 일이다. 그래서 조선소 대량해고 저지 시민대책위원회의 종교, 시민 단체는 10월 29일 경남 거제로 떠나는 '조선소 희망버스'를 제안하게 됐다.

지난 20년간 조선소를 일구어온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대량해고를 당장 멈추고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하기 위해서다. 조선소 원·하청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상징하고 요구하는 3000-3000 고용안정호 제작에도 동참해 달라는 마음으로 거제로 내려간다.

'고용안정호'는 종교인, 시민, 노동자 3000명이 3000원씩 모아 가로 7미터, 세로 3미터의 대형 모형배를 제작하는 일이다. 거제에 함께 내려가지는 못하지만, 기와 한 장 얹는 마음으로 동참해달라는 것이다. 조선소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바라는 마음이 3만명, 30만명으로 불어나기를 바라는 간절함을 담아 거제로 내려간다.

해고의 고통, 두려움에 함께하고, 그들의 외로움과 절망에 용기를 주기 위해 전국의 희망버스들이 거제로 향한다. 그리고 하느님과 부처님께 기도하고자 한다. 하청노동자 해고라는 비인간적인 행위가 멈추어 달라고, 약자를 짓밟는 야만을 멈추어 달라고. 더불어 각자의 마음의 믿음에!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양한웅 조선하청대책위 집행위원장 입니다.



태그:#조선소, #희망버스, #구조조정, #10.29,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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