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가면 그 뿐이에요. 이대로 떠나겠어요. 마음대로 왔다가 마음대로 그렇게 가시나요..'

양수경이 부른 추억의 인기가요 <당신은 어디 있나요>의 한 구절이다. 인생의 모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노래 가사처럼 마음이 변하면 떠나가는 것은 쉽지만 일단 결정을 내리면 되돌리기는 쉽지않다. 사랑만이 아니라 일도 인생도 마찬가지다.

여자프로농구 청주 KB스타즈 주전 가드였던 홍아란이 임의탈퇴 신분이 됐다. 홍아란 측은 "심신이 지쳤다"며 휴식이 필요하다는 의사를 구단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단은 고심 끝에 홍아란의 요구를 수용했다. 이로서 홍아란은 2016-2017시즌 잔여 경기에는 출전할 수 없게 됐다.

임의탈퇴는 은퇴와는 의미가 조금 다르다. 홍아란은 올 시즌을 마치고 나면 차기 시즌 연봉 협상과 선수등록 등의 절차를 통해 복귀할 수 있다. KB측도 홍아란의 복귀 가능성에 대하여 열린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여자농구에서는 임의탈퇴가 빈번한 편이다. 다른 종목에서 임의탈퇴는 보통 선수들이 나이가 들어 은퇴 수순을 밟거나, 심각한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켰을 때 중징계 차원으로 정말 부득이한 상황에서만 내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여자농구의 임의탈퇴는 선수생활의 과도기에 더 가깝다. 물론 정말로 선수생활을 그만두기 위해서 임의탈퇴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지만, 잠시 농구를 떠났다가 1~2년 이후 은근슬쩍 복귀하는 경우도 많다.

빈번한 임의탈퇴가 반복되는 이유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일까. 근본적으로 여자농구의 열악한 인재풀과 현실과의 간극 차이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한국 여자농구는 공급과 수요가 극도로 불균형한 구조다. 각 프로구단은 매년 선수난에 시달리는데 쓸만한 선수는 양적-질적으로 모두 부족하다. 그나마 프로에 진출하는 몇 안되는 선수들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성인무대에 뛰어들어 경쟁해야 한다. 보통 대학을 거치는 남자농구 선수들과도 다르게, 성인이 될 만한 충분한 준비와 과정을 거치지 않은 상황에서 바로 사회생활에 적응해야 하는 것이다.

여자 선수들은 보통 남자들보다 더욱 감성적이고 예민하다. 과거처럼 헝그리 정신으로 독하게 운동하던 시대도 아니다. 자연히 프로 진출 이후 월등히 높아진 경기력 수준과 강훈련을 따라잡고 무한 경쟁의 압박감을 극복하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몇 경기 부진한 경기력으로 미디어나 팬들의 비판이라도 받으면 심리적으로 큰 타격을 받기도 한다.

또한 프로 지도자들이라고 해도 과거의 권위적이고 성적 지상주의에 치우친 엘리트 체육 시스템에만 익숙해져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라, 신세대 선수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수평적으로 소통하는 데는 서투른 경우가 많다. 시대가 달라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강압적인 지도방식이나 폭언과 인신공격을 일삼는 지도자들도 부지기수다.

한편으로 지도자 입장에서도 스트레스인 게, 어린 선수들은 프로에 와서 기본기나 전술 등을 아예 새롭게 다시 가르쳐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만큼 일일이 신경써야 할 부분이 많아지고 잔소리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남녀농구를 체험해 본 지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여자농구팀을 지도하는 게 남자보다 수배는 더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결국 이런저런 이유로 경쟁에서 낙오되거나 부상이라도 당한 선수들은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농구를 포기하게 된다. 남자 성인 선수들이 대부분 대학 시절에 겪을 법한 시행착오를, 여자선수들은 프로에 와서야 처음 겪는 경우가 많다. 해마다 많은 여자 선수들이 농구가 힘들다는 이유로 선수생활을 접는 경우가 빈번해지면서 선수층은 더욱 열악해지고 있다.

농구를 떠나는 여자 선수들, 열악해지는 선수층

홍아란은 이제 겨우 25세에 불과하다. 실력과 인지도도 WKBL에서는 스타급에 해당한다. 이 정도 선수가 전력에서 이탈하면 구단도 이만저만 손실이 아니다. 원래 그저그런 선수도 아니고 프로에 와서 꽤 자리를 잡았다고 평가받는 선수마저도 농구를 이렇게 쉽게 포기한다는 것은 여자농구계의 심각한 현실이다.

어차피 문제는 농구를 떠난 이후에도 계속된다. 운동도 힘들지만 소속감을 잃어버린 그 바깥의 사회는 더욱  차갑다. 농구를 떠난 뒤 다시 학업에 매진하거나 재취업에 성공하는 경우는 차라리 낫지만, 평생 농구만 해온 이들이 갑자기 새로운 진로를 찾는 것도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농구를 포기하고 나서 생활고에 시달리는 선수들도 상당수다. 일부는 차라리 힘들어도 연봉이 꼬박꼬박 나오던 선수 시절을 그리워하며 다시 현역 복귀를 타진하는 경우도 적지않다. 

하지만 구단이나 지도자 입장에서는 한 번 농구를 포기했던 선수를 다시 신뢰하기가 쉽지 않다. 힘들어지면 또 언제 무슨 이유로 그만둔다고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구단 입장에서도 공들여 키운 선수들이 갑자기 떠나버리면 피해가 막심하다. 물론 선수들 개개인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만 일각에서는 선수들이 세상물정을 잘 모르면서 너무 감정적이고 무책임하게 행동해서는 안된다는 따가운 시각도 있다.

'프로'가 된다는 것은 단지 운동만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그에 걸맞는 사회적 연륜과 성숙함을 습득하는 과정이다. 조금만 힘들다고 금새 포기하는 선수들의 의지 부족도 문제지만, 미숙한 젊은이들에게 충분한 준비 과정을 제공하지 못한 채 무한 경쟁으로만 내모는 한국 체육시스템의 열악한 인프라에 대하여 구조적인 문제도 돌아봐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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