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종로의 기적> 포스터. 시네마달에서 배급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종로의 기적> 포스터. 시네마달에서 배급했다. ⓒ 시네마달


<종로의 기적>(2010)은 <두 개의 문>(2011)과 함께 2010년대 이후 제작된 한국 독립다큐멘터리 중 많이 회자되는 영화 중 하나다. 다운로드 서비스가 안 되는 터라, 개봉 이후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싶어 하는 관객들을 위해 상영회를 종종 개최해왔지만, 최근 <종로의 기적>이 다시 독립 영화팬들 사이에서 소환된 것은 아마도 지난해 12월 개봉한 <위켄즈>(2016) 영향이 크다. 그 여세를 몰아 지난 18일, 19일 서울 종로구 인디스페이스에서 이틀간 열렸던 '블랙리스트 영화사 시네마달 파이팅 상영회-촛불 영화'에서 전설의 그 영화 <종로의 기적>을 만날 수 있었다.

7년 만에 다신 만난 전설의 영화

<종로의 기적>은 국내 최초 게이 커밍아웃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로, 2011년 개봉 당시에도 적잖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종로의 기적>을 제작한 '성적 소수문화환경을 위한 모임 연분홍치마'(아래 연분홍치마)의 차기작 <두 개의 문>도 개봉 당시 독립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7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등 연이어 성공을 거둔 터라, 독립영화계 내에서 연분홍치마를 집중 조명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그 이후 연분홍치마는 <두 개의 문> 김일란 감독과 <종로의 기적> 이혁상 감독이 공동 연출한 <공동정범>(2016)을 공개하며, 관객들과 평단의 호평을 받기도 했다.)

<종로의 기적>이 만들어진 지 7년이 지난 지금도 성 소수자(LGBT)가 누군가에게 자신의 성 정체성을 커밍아웃하는 게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종로의 기적>은 이미 2000년대 후반에 성 소수자가 누려야 할 권리를 외치는 용감한 영화다. 굉장한 선구자적 자세다. 하지만 <종로의 기적>을 촬영 중이던 2008년이나, 그로부터 7년이 지난 2017년에도 동성애를 바라보는 세상의 인식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한국 사회는 더욱 보수화되었고, LGBT를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들의 인권은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다큐멘터리 영화 <종로의 기적> 한 장면. 성 소수자의 이야기는 언제나 어렵다.

다큐멘터리 영화 <종로의 기적> 한 장면. 성 소수자의 이야기는 언제나 어렵다. ⓒ 시네마달


하지만 성 소수자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종로의 기적> 이후 6년 만에 등장한 <위켄즈>는 국내 최초 게이 코러스 '지보이스' 단원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지보이스'는 주로 성 소수자들을 위한 공연을 중점으로 활동하지만, 때로는 쌍용자동차 복직투쟁현장, 세월호 참사 추모 공연,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촛불집회 등 그들을 필요로 하는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인권 운동계의 아이돌'로 통한다. 이전에는 성 소수자 인권 운동을 위주로 활동했던 '지보이스'가 각종 사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계기는 자신들을 비롯한 세상 모든 사람이 차별받지 않고 살아가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함이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이혁상 감독이 만든 <종로의 기적>도 <위켄즈>와 같은 꿈을 꾸고 있었다. <종로의 기적>에는 4명의 게이가 등장한다. 게이라는 공통점을 제외하고 이들은 직업도 성격도 좋아하는 파트너 취향도 제각각이다. 지금도 영화감독으로 활동 중인 소준문씨는 <종로의 기적> 다큐멘터리 촬영 당시 진행하고 있던 자신의 영화에서 스태프들과의 연이은 소통 실패로 힘들어하고 있었고, 열혈 인권 운동가 장병권씨는 성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 향상을 위해 이곳저곳 열심히 뛰어다닌다. 다큐멘터리 촬영 도중 세상을 떠나 모두를 안타깝게 했던 고 최영수씨는 <위켄즈>의 배경이기도 한 '지보이스'의 열혈 단원으로 그의 인생 최고의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등장한 정욜씨는 대기업에 다니면서 HIV/AIDS에 걸린 환자들의 인권 향상 운동에 틈틈이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7년이 지났지만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7년이 지난 지금, <종로의 기적> 주인공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여전히 소준문 감독은 게이들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고 있었고, 동성애자 인권연대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병권씨는 최근 연분홍치마팀에 합류하여 성 소수자들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다. 정욜씨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HIV/AIDS 감염인들의 인권 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으며, 영수씨를 먼저 떠나보내야 했던 '지보이스'는 <위켄즈>를 만들어 자신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널리 알리고자 한다.

<종로의 기적> 촬영 당시, 이혁상 감독을 포함한 <종로의 기적> 출연진들은 한결같이 성 소수자들의 인권이 존중받고, 자신들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세상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6~7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LGBT들은 성 소수자들의 인권을 가볍게 취급하고, 그들을 '예외적, 일탈적' 존재로 규정하는, 변하지 않는 세상의 태도에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 몇몇 성 소수자들 사이에서는 "내가 이러려고 촛불을 들었나"하는 격양된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보고 싶어도 보기 어려웠던 영화가 대중 앞에 나설 기회를 만드는 데, 시네마달은 언제나 앞장섰다.

보고 싶어도 보기 어려웠던 영화가 대중 앞에 나설 기회를 만드는 데, 시네마달은 언제나 앞장섰다. ⓒ 시네마달


<종로의 기적> <위켄즈>의 주인공들은 자신들의 사랑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인생과 사랑 또한 다수의 이성애자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하고 보편적인 사랑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인물들의 일상을 카메라로 촘촘히 따라가는 <종로의 기적>, <위켄즈>가 감동으로 다가오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종로의 기적>이 개봉한 지 7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독립영화팬들이 찾는 스테디셀러로 주목받는 것은 게이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라는 요소도 있지만, 그 어떤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준 훌륭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로의 기적>처럼 <위켄즈>도 시간이 흐른 뒤에도 많은 이들이 찾는 명작이 될 것이다.

다운로드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아, 보고 싶어도 보기 어려웠던 <종로의 기적>을 '블랙리스트 배급사' 시네마달을 구하는 취지에서 마련한 촛불영화제를 통해 관람할 기회를 제공한 분들께 감사의 인사라도 드려야 하나. 몇 년 뒤에는 지금보다는 더 나은 세상에서 <종로의 기적> 주인공들과 함께 웃으면서 영화를 보는 그 날이 오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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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지금 여기에서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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