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한 해 이혼 건수는 11만5000여 건으로 2009년 12만4000건에 비해 무려 7%나 감소했다. 이런 통계에서도 드러나듯 우리나라의 이혼율은 2004년 이래 꾸준히 감소 추세다. 반면 20년 이상 산 부부의 경우 2003년 17.8%에서, 2014년 28.7%, 2016년 30.4%로 이혼율이 늘었다. 이른바 '황혼 이혼'이다. 그런 가운데 '졸혼'이라는 말도 나온다.

<꽃보다 할배>를 찍을 당시만 해도 부인의 마중을 받으며 여행을 떠났던 백일섭이 2017년 KBS 예능 <살림하는 남자>에 '졸혼'한 남자로 등장하며 예능에도 '졸혼'이 다뤄지기 시작했다. 일상 곳곳에 숨어있는 남녀의 불편한 이야기를 다룬다는 EBS <까칠 남녀>의 세 번째 주제 역시 '졸혼'이다. E채널의 <별거가 별거냐>는 연예계 잉꼬부부 세 쌍의 가상 별거를 다루며 졸혼 코스프레를 해본다.

이제 막 도입되기 시작한 예능 속 졸혼은 어떤 모습일까?

졸혼의 대명사, 백일섭

 <살림하는 남자들2>의 백일섭. 그는 졸혼남의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살림하는 남자들2>의 백일섭. 그는 졸혼남의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 KBS2


12일 <살림하는 남자2> 출연자로 인터뷰한 백일섭은 졸혼과 관련하여 화제의 중심에 선 것이 부담스러운지 '졸혼'이 무엇인지 정확히 몰랐다며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졸혼'이란 단어가 최근 예능을 비롯하여 화제의 중심에 서게 된 데는 백일섭의 졸혼이 큰 역할을 했다. 지난해 TV조선 <인생 마이웨이>에서 "이혼 뭐 이런 것은 아니고 내가 결혼을 졸업하자고 한 것"이라며 40년의 결혼 생활을 마쳤다고 밝힌 후 지난 2월 7일 종영한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1에서 홀로 사는 모습을 보여주며 졸혼의 대표적 인물로 부상했다.

아버지로서 대우도 받고 싶었고 이런저런 사이클이 맞지 않아서 스스로 나간다던 백일섭은 이후 "혼자 살며 살림하는 법도 익히며 인생을 다시 배우고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하지만 예능에서 긍정적으로 부각된 백일섭과 달리, 4월 10일 <까칠 남녀>에 소개된 60대 졸혼남의 말로는 '고독사'였다. 2015년 통계로 5시간마다 한 사람씩 '고독사'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고 그 비율은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렇게 대비되는 졸혼 이후의 삶, 그 이전에 결혼을 졸업한다는 '졸혼'은 무엇일까?

졸혼이란 단어를 처음 등장시킨 것은 일본의 작가 스기야마 유미코이다. 그의 책 <졸혼을 권함>은 우리나라에 <졸혼 시대>로 번역됐다. 스기야마 유미코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그녀 자신의 경험에서부터이다. 그는 마흔 무렵 남편과의 갈등으로 고민하던 중 딸의 권유로 남편과 따로 살게 됐다. 그리고 주변의 부부들을 살펴보고 각자의 상황에 맞춰 부부 관계와 역할을 새롭게 정립했다. 이런 상황을 '졸혼'으로 정의하면서 이 단어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것. 

까칠하게 들여다 본 졸혼

<졸혼시대>  (스기야마 유미코 지음 / 장은주 옮김 / 더퀘스트 펴냄 / 2017.02. / 1만5000원)

▲ <졸혼시대> (스기야마 유미코 지음 / 장은주 옮김 / 더퀘스트 펴냄 / 2017.02. / 1만5000원) ⓒ 더퀘스트


하지만 '졸혼'이란 단어는 서구 사회에서는 이질적인 단어다. 결혼 생활이 안 맞으면 그냥 '이혼'을 하면 되는 사회에 굳이 '졸혼'이란 게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졸혼'의 등장을 <까칠 남녀>는 가족주의 전통이 아직 강고하게 남아있는 한국과 일본과 같은 사회에서 이혼이라는 법적·사회적 부담을 덜 짊어지고, 부부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도기적 방식이라 정의한다. 즉, 현재 한국 사회의 이혼율 감소가 젊은 층의 결혼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에 초래되고 있는 결과인 데다가, 또한 '가족'이 급격하게 해체되고 있는 상황에서 '졸혼'은 '과도기적' 묘수이자 '트렌드'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이다.

그럼에도 '졸혼'이 화제가 되는 이유는 뭘까. <까칠 남녀>는 20~30대에 '사랑'이라는 정서적 결정에 기초하여 법적으로 구성된 부부라는 관계를 평생 끌어가야 하는 비효율적이고 가혹한(?) 제도적 문제에 근거한다고 분석한다. 덧붙여 중년 여성의 63%(중년 남성의 54%)가 졸혼을 원한다는 통계에 빗대어 OECD 꼴찌인 '결혼 후 남녀의 가사분담률'을 지적한다. <까칠 남녀>에서 여성학자 이현재는 기존의 경제학에서 여성의 가사 노동을 '임금' 노동의 대상으로 취급하지 않듯이 남성과 여성이 생각하는 '가사 노동'의 갭, 맞벌이해도 여전히 가사 노동은 여성의 몫인 우리의 불평등한 현실이 많은 여성이 '졸혼'을 갈망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고 분석한다.

특히 <까칠 남녀>가 주목한 것은 백일섭이 보이는 사랑에 대한 뒤늦은 깨달음과 그런데도 주목받는 가족의 소중함이라는 여전한 가족주의의 범주가 아니라, 현실로서의 '졸혼'이다. 그를 위해 졸혼남 평론가 김갑수와 함께 69세 정정숙 여사의 '돈만 있다면 100% 졸혼'이라는 실감 나는 소회를 청취하고, 경제적 독립과 졸혼 이후의 이성 문제라는 현실적 '함정'들을 짚는다. 서민 박사는 최근 '졸혼'으로 부각됐을 뿐 이미 우리 사회에는  '별거', '기러기 아빠', '쇼윈도 부부' 등 '졸혼'의 유사 사례가 이미 존재해 왔음을 솔직하게 지적한다.

졸혼이 안 된다면 별거라도

 <별거가 별거냐>는 아직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별거'에 대해 대중적으로 접근하려고 시도한다.

<별거가 별거냐>는 아직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별거'에 대해 대중적으로 접근하려고 시도한다. ⓒ E채널


지난 1일부터 E채널을 통해 방영되며 중장년층 사이에 소소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별거가 별거냐>는 '결혼에도 방학이 필요하다'를 모토로 건다. 잉꼬부부로 널리 알려진 결혼 14년 차 김지영-남성진 부부, 19년 차 이철민-김미경 부부, 11년 차 사강-신세호 부부를 등장시켜 아슬아슬 위기의 부부상을 보여주며 '위기'를 극복하는 방식으로 '별거'를 제안한다.

술 마시는 남편과 가정적인 아내, 살림하는 남편과 외향적인 아내, 잔소리 많은 아내와 자유롭고 싶은 남편. 부부라는 이름만으로는 버거운 위기의 부부들이 '이혼' 대신 '별거'라는 애교 있는 해법을 택하는 모습을 리얼리티로 방영한다. 즉, '졸혼'은 아니지만, 잠재적 졸혼으로 중년 부부의 위기를 돌파하는 또 다른 결혼의 해법이다.

대한민국의 대표적 연기자 백일섭, 그리고 대표적 잉꼬부부 김지영-남상진이 방송에 등장하여 결혼을 마쳤음을 이야기하고, 거침없이 속내를 드러내며 부부의 위기를 보여주는 시절. 제아무리 주말 드라마를 통해 '가족' 지상주의를 외쳐도, 현실의 가족은 '해체' 중이다. 그리고 그 '해체'의 해법이 '졸혼'으로, 때론 '별거'란 완곡한 방식으로 예능에 등장하고 있다. 아직은 '가족'과 '부부'를 쉽게 버릴 수 없는 우리 사회의 고육책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백일섭 까칠남녀 별 거가 별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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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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