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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2016년 20, 30대 청년 6명은 시력을 잃었습니다. 파견노동자로 스마트폰 부품 공장에서 일하면서 만졌던 메탄올이 실명을 불러올 줄은 몰랐습니다. '노동건강연대'와 <오마이뉴스>는 실명 청년들에게 닥친 비극과 현재의 삶을 기록하고, 누가 이들의 눈을 멀게 했는지 파헤칩니다. 동시에 연재되는 다음 스토리펀딩에서 시력을 잃은 청년들을 후원할 수 있습니다. - 기자 주

4월 12일 오전 인천지방법원 앞에서 전정훈씨와 메탄올 실명 청년들을 돕고 있는 박혜영 노동건강연대 활동가(노무사)가 가해자 안아무개씨가 빠져나간 정문 쪽을 바라보고 있다.
 4월 12일 오전 인천지방법원 앞에서 전정훈씨와 메탄올 실명 청년들을 돕고 있는 박혜영 노동건강연대 활동가(노무사)가 가해자 안아무개씨가 빠져나간 정문 쪽을 바라보고 있다.
ⓒ 민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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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2일 오전 11시 인천지방법원 410호 법정. 청년들의 눈을 멀게 한 피고인이 이곳 법정에 섰다. 곧 검사는 피고인의 공소사실을 읽었다.

"피고인은 파견업체 소속 근로자인 전정훈과 이진희가 각각 입은 재해와 관련하여 (중략) 메틸알코올 취급 근로자에게 유해성 등을 주지시키는 않는 등 안전관리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피고인의 변호인이 항변했다.

"메틸알코올의 위험성을 몰라서 그런 겁니다."

그는 판사를 향해 말을 이었다.

"피해자 쪽 하고 민사소송 중이고, 합의 노력을 해야 하는데, 시간이 필요합니다."

판사는 이를 받아들였고, 공판은 4분 만에 끝났다. 시력을 잃은 피해자 전정훈(35)씨가 주변의 도움을 받으며 법정에 도착한 것은 공판이 끝난 직후였다. 또 다른 피해자인 이진희(29)씨는 함께하지 못했다. 실명을 하고 뇌도 다친 탓에 경남 창원에서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정훈씨에게 피고인의 말을 전했다. 정훈씨가 말했다.

"거짓말이에요."

파견노동자는 직원이 아니었다

피고인 안아무개씨는 인천 남동공단에서 스마트폰 부품을 만드는 업체 BK테크를 운영했다. 삼성전자·LG전자의 하청업체였다. 수십 대의 공작기계를 가져다 놓고, 불법으로 파견을 받은 청년들을 싼값에 부려먹었다.

금속 부품을 매끄럽게 가공하기 위해 쓰는 절삭유로 메틸알코올(메탄올)을 선택했다. 고농도의 메탄올은 인체에 치명적인 독성물질로, 비슷한 성질이지만 독성이 약한 에틸알코올(에탄올)에 비해 값이 싸다. 공작기계에서 뿜어내는 메탄올은 정훈씨의 중추신경계를 공격했다.

정훈씨는 2016년 1월 16일 토요일 회사에 나갔다가 몸이 오슬오슬 춥고 떨린 데다 앞이 잘 안 보이지 않아 조퇴했다. 그는 집에서 쓰러졌다. 동생이 근처 대학병원으로 그를 옮겼다. 병원은 BK테크에 메탄올을 사용했는지 물었다. "사용하지 않는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결국 병원은 정훈씨가 시력을 잃은 원인을 찾지 못했고, 적절한 치료도 하지 못했다.

이후 정훈씨는 시각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그가 보는 세상은 흐릿하다. 사물을 눈앞에 바싹 가져다 대야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신호등의 색깔을 구분할 수 없는 그에게, 길을 건너는 일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BK테크는 4개월 일한 그의 실명을 묻거나 알려고 하지 않았다. 파견노동자는 직원이 아니었다.

신호등의 색깔을 구분할 수 없는 메탄올 실명 피해자 전정훈씨에게, 길을 건너는 일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신호등의 색깔을 구분할 수 없는 메탄올 실명 피해자 전정훈씨에게, 길을 건너는 일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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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2월 경기도 부천의 스마트폰 부품 제조업체에서 일하다 시력을 잃은 청년들이 발견되자, 고용노동부는 메탄올을 취급하는 전국의 스마트폰 부품 업체 점검에 나섰다. 근로감독관은 BK테크를 찾았다. 메탄올을 쓰고 있느냐는 질문에 안씨는 부인했다.

"지난해 말부터 절삭용제(절삭유)를 에틸알코올로 교체했고, 앞으로도 메탄올을 취급하지 않을 계획입니다."

거짓말이었다. 안씨는 어떠한 안전 조치도 하지 않고 메탄올 증기로 그득한 공장에 파견노동자들을 밀어 넣었다. 결국, 2월 17일 이진희씨가 쓰러졌다.

사고 이후 1년 3개월이 지났지만, 정훈씨는 안씨로부터 단 한 번도 연락을 받지 못했다. 그는 지난해 9월 메탄올 실명 피해자를 돕는 박혜영 노동건강연대 활동가(노무사)를 만나서야, 실명의 원인이 BK테크에서 사용한 메탄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안씨는 법정에서 변호인을 통해 판사에게 "메탄올이 위험한지 몰랐다", "피해자들과 합의 노력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호소했다. 정훈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법정에서까지 거짓말을 하는 것을 보면, 피해자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들려요. 사과받을 거라 기대도 안 해요. 자기 자식들이 이런 일을 당했으면, 가만히 있었겠어요?"

이제 와서 "죄송하다"는 가해자

4월 12일 오전 인천지방법원 앞에서 피고인 안아무개씨가 법원을 빠져나가기 위해 횡단보도 앞에 섰다.
 4월 12일 오전 인천지방법원 앞에서 피고인 안아무개씨가 법원을 빠져나가기 위해 횡단보도 앞에 섰다.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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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법원을 나서는 피고인 안씨를 쫓았다. 그에게 물었다. "피해자한테 아직까지 사과한 적은 없는데, 하실 말씀 없으세요?" 변호인이 대신 답했다. "그걸 재판받는 사람한테 물어보면 어떻게 합니까. 그만 하세요." 기자는 재차 안씨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안씨는 침묵을 지켰고, 변호인이 대신 발끈했다.

변호인 : "검사라도 됩니까?"
기자 : "피해자를 대신해서 묻는 겁니다."
변호인 : "피해자라고 해서 그렇게 해도 됩니까? 그러지 마세요."
기자 : "사과가 있어야 합의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변호인 : "혼자 떠드세요."
기자 : "피해자가 와 있습니다."
변호인 : "여보세요! 기자에게 사람을 괴롭힐 권리가 있는 겁니까."

얼마 간의 말씨름이 이어졌고, 결국 안씨가 입을 열었다.

안씨 : "죄송합니다. 이진희씨 아버님과 자주 통화했고, 전정훈씨에게 전화했는데 안 받더라고요. 저도 장애인 부모님 아래에서 태어났어요. 그 심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기자 : "피해자들의 시력이 돌아올 수는 없지만, 피해를 회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안씨 :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

그는 곧 법원을 떠났다. 정훈씨에게 안씨의 말을 전했다.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저한테 연락했다고요? 또 거짓말이네요. 한 번도 연락받은 적이 없어요. 죄를 뉘우치기보다 빠져나가려고 수를 쓰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빠져나갔잖아요."

가해자, 그 누구도 감옥에 가지 않았다

메탄올로 시력을 잃은 또 다른 피해자 김영신씨가 4월 7일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을 찾아 가해자의 파견법 위반 사건 기록을 열람했다. 영신씨 눈에 판사들이 법정에 들어가는 모습이 들어왔다.
 메탄올로 시력을 잃은 또 다른 피해자 김영신씨가 4월 7일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을 찾아 가해자의 파견법 위반 사건 기록을 열람했다. 영신씨 눈에 판사들이 법정에 들어가는 모습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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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탄올로 시력을 잃은 또 다른 피해자 김영신씨가 4월 7일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을 찾아 가해자의 파견법 위반 사건 기록을 열람했다. 시력을 잃은 영신씨 대신 기자가 공소장의 내용을 설명해줬다.
 메탄올로 시력을 잃은 또 다른 피해자 김영신씨가 4월 7일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을 찾아 가해자의 파견법 위반 사건 기록을 열람했다. 시력을 잃은 영신씨 대신 기자가 공소장의 내용을 설명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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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씨는 불법으로 100명이 넘는 파견노동자를 받아 공장을 돌렸고, 이 과정에서 진희씨와 정훈씨가 시력을 잃었다. 그는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위반과 이진희씨 불법 파견에 대한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전정훈씨 불법 파견은 이미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벌금 100만 원.'

인천지방검찰청은 지난해 12월 안씨를 정식 재판에 넘기지 않고 벌금 100만 원의 약식명령을 청구했다. 인천지방법원은 한 달도 안 돼 벌금 100만 원을 확정했다. 정훈씨는 정작 이 소식을 듣지 못했다. 이날 기자로부터 전해 들었다.

"벌금 100만 원이요? 그 사람들한테는 '껌값'이에요. 기자님, 이 사회에서 정의가 없어진 지 한참 됐잖아요. 몇 년간 국가는 없었어요. 엄벌해야 가해자들이 피해자들과 합의할 생각이라도 할 텐데... "

정식 재판에 넘겨진 사건도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청년들의 눈을 멀게 한 다른 가해자들이 이미 법원의 선처를 받은 탓이다. 그 누구도 구속되거나 실형을 받지 않았다.

일부 파견사업주들은 검찰의 약식명령 청구로 100만~400만 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검찰이 정식 재판에 넘긴 일부 파견사업주와 사용사업주는 모두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메탄올의 위험성을 몰랐다", "잘못을 반성하고 있다", "피해자가 산재보험 혜택을 받고 있다"와 같은 피고인의 읍소를 받아들였다.

결국 청년들의 눈을 멀게 한 그 누구도 감옥에 가지 않았다. 또한, 누구도 항소하지 않고 판결을 받아들였다. 형이 가볍다면서 검찰이 항소한 사건은 1건뿐이다.

정훈씨가 보기에, 검찰도 법원도 가해자들에게 제대로 된 죗값을 물리지 못했다. 그렇다고 피해자들의 눈물을 닦아주지도, 마음을 다독여주지도 못했다. 안씨를 재판에 넘긴 인천지방검찰청에 전화해, 정훈씨의 의견을 전했다. 검사가 말했다.

"지난해 10월 안씨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이 기각했어요. 저희도 중요한 사건으로 생각했는데, 결과가 안 좋아서 속이 많이 상했습니다. 산업재해 사건에서는 사람 셋은 죽어야 구속영장이 나와요. 산업재해로 다친 사건에서 구속된 사례를 찾지 못했어요. 한두 건만 보면 부정의로 보이지만, 길게 보면 반복적으로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엄벌을 받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공소유지에 더 신경 쓰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이런 의문이 들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라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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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누가 청년의 눈을 멀게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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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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