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촉촉하게 대지를 적시던 지난 4월 17일 오후. 여의도 KBS별관 앞에서 성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트로트를 살립시다"
"방송사는 성인가요 프로그램을 편성하라"
"가수들에게 평등한 기회를"
"같은 가수 재방송 그만하라"
"유전유명 무전무명" 

 한국방송가수협회 회원들이 4월 17일 오후 KBS별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후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국방송가수협회 회원들이 4월 17일 오후 KBS별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후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추광규


성난 목소리를 낸 사람들은 화려한 무대 위에서 노래로 존재감을 말해야 하는 트로트 가수들이었다. 트로트 가수가 방송사를 상대로 시위에 나선 것은 전에 보지 못했던 장면이다. 이들은 왜 이날 비가 내리는데도 시위를 마다하지 않았을까? 트로트 가수들 앞에서 시위를 이끈 사람은 한국방송가수협회 태민 회장이다. 얼마나 절박하고 답답하기에 시위까지 나섰는지 속사정이 궁금했다. 

태민 회장은 지상파 방송 등의 외면과 정부의 소홀함으로 자신들의 존재감을 알리고 프로 의식을 갖기에 역부족이라는 말로 말문을 열었다. 불편한 심기를 애써 감추려 했지만, 묵직한 어조와 참담한 눈빛에서 드러난 그의 심경은 그동안 얼마나 힘겨운 시간을 겪어 왔는지 짐작케 했다. 

태민 회장은 고령화 시대에 걸맞지 않은 지상파 방송의 편향된 편성을 지적했다. 성인가요를 좋아하는 마니아층이 두터운 데도 CM 광고수주가 없다는 이유로 차별받고 있다고 성토했다. 이어 불법 외주제작사들의 편파적 출연 섭외 때문에 그나마 있는 몇몇 케이블 방송 출연 역시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아울러 성인가요 관계자들의 실력 배양과 각성을 요구하며 불법이 난무하는 외주제작사들의 근절 역시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부에는 트로트 문화 활성을 위해 문화체육관광부 등 범정부 차원에서 트로트 문화 생태계를 돌보고 인구 3분의 2가 장년층인 작금의 현실을 고려해 이들 정서에 맞는 트로트 콘텐츠를 생산·발전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28일 여의도 협회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태민 회장

28일 여의도 협회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태민 회장 ⓒ 추광규


다음은 태민 회장과 일문일답이다. 

-트로트 가요계의 현실이 어떻길래 시위까지 나선 건가?
"한마디로 설 자리가 없다. 지상파 방송 등에서 외면하기 때문에 존재를 알리기에 한계가 있다. 프로 의식을 갖기엔 역부족이다. 우리가 설 자리를 확보해 달라는 의미로 성인가요 프로그램을 확대 편성을 요청하는 시위다." 

-KBS 등 공중파 3사에서 성인 가요 방송시간은 얼마나 되나
"방송3사 중 유일하게 KBS만이 전국노래자랑 가요무대 2개 프로에 그친다. MBC와 SBS는 전무하다." 

-성인가요, 특히 트로트 가요에 대한 홀대가 심각하다고 주장하는데 구체적인 자료가 있는가?
"지금은 100세 시대로 고령화된 연령층이 많이 늘어났다. TV 주 시청자는 중장년층인데 반해 시청에 무관심한 젊은 층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태반이다. 이치에 맞지 않는 역차별 화된 프로그램 편성으로 장년층들로부터 많은 원성을 사고 있다."  

-방송에서 트로트가 나오지 못하는 게 다른 가요 장르에 뒤처져서는 아닌가?
"절대 그렇지 않다. 성인가요를 좋아하는 마니아층이 두텁다. 단지 CM 광고수주가 없다는 이유로 편 가르기식 차별화 때문에 성인가요가 폄하되고 있다. 트로트는 우리 정서에 가장 적합한 장르로 무한 경쟁력을 지닌 노래 문화이다" 

-트로트가 공중파 방송에서 일정 시간 편성되어야만 하는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는지.
"소위 아이돌 그룹이 출연하는 프로는 방송3사 마다 시간별로 매주 있다시피 한다. 어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장르의 음악들은 장년들에게는 소음일 뿐이다." 

 태민 회장

태민 회장 ⓒ 추광규


-지상파 방송이 KBS 외에 MBC, SBS 등도 있는데 앞으로 이 방송국 앞에서도 시위할 예정인지?
"편성권이 보장될 때 까지 지속적으로 시위 등을 할 것이다. KBS뿐만 아니라 MBC, SBS도 중요하다. 하지만 KBS는 공영방송으로 특히 방송허가 조건에 성인가요의 균형적인 편성도 포함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TV에 그 시간을 편성을 하지 않고 라디오방송에 넣는 편법을 하고 있다. 이런 부분을 바로 잡겠다는 것이다."

-공중파가 아니라면 케이블방송 또는 다양한 매체가 있어 활로를 그런 쪽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몇몇 케이블 방송이 있긴 하지만, 미미한 시청률과 불법 외주제작사들의 편파적 출연 섭외 때문에 그것 또한 쉽지 않다. 시청률 높은 공중파 방송이 인지시키는 데 훨씬 우위에 있기 때문에 집중과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1회성 시위로는 쉽지 않을 텐데 앞으로의 계획이 있는가.
"제가 알기로는 가요 역사 이래 가수단체에서 공중파(KBS) 방송을 향해 성인가요 편성비율을 확대해 달라는 시위는 처음인 것으로 알고 있다. 단발로 그치지 않고 연중무휴 지속해서 우리의 권리와 요구가 관철 수용될 때까지 외칠 것이다." 

-국민이나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은?
"사실 성인가요의 주 장르인 트로트 활성화는 문화체육관광부 등 범정부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이제 인구 3분의 2가 장년층이지 않은가. 주류 세대를 외면하는 것은 한국적 트로트 가요를 배제하려는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울러 가수들을 비롯한 성인가요계에 종사하는 관계자들도 실력 배양과 각성이 요원하다고 본다. 또한, 불법이 난무하는 자격 없는 외주제작사들의 근절대책도 시급하다." 

-한국방송가수협회를 소개해 달라.
"전국적으로 트로트 가수는 7~8만 명으로 파악된다. 이들 가운데 저희 협회 회원은 일천여명이다. 깨끗·공정·공평함을 슬로건으로 탄생한 한국방송가수협회는 실력 있는 가수들을 규합해 자구책으로 협회 내에 모바일 채널인 방가TV 라는 방송매체를 개국, 쇼 오락 가요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일체의 금품수수나 향응 제공 등을 금하고 있다. 일체의 외부인 도움 없이 순수 가수들이 제작 송출해 인기리에 방송하고 있다. 곧 도래할 스타의 산실로 자리매김할 것이며 협동심과 돈독한 유대로 국내 최고의 가수단체로 발돋움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민 트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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