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운 한중전'... 2018 남자배구 세계선수권 아시아 예선전

'아쉬운 한중전'... 2018 남자배구 세계선수권 아시아 예선전 ⓒ 아시아배구연맹


한국 남자배구가 또다시 '참사'에 가까운 쓴맛을 봤다.

남자대표팀은 지난 13일 이란 아르다빌에서 펼쳐진 2018 세계선수권 아시아 예선전에서 중국에 완패를 당했다. 이로 인해 2020년 도쿄 올림픽 세계예선전과 국제예선전 출전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

국제배구연맹(FIVB)이 지난 5월 4일 발표한 '2020 도쿄 올림픽 출전권 부여 방식 개편 잠정안'에 따르면, 도쿄 올림픽 출전 국가 확정은 남녀 모두 4단계에 걸쳐 이루어진다.

1단계는 도쿄 올림픽 개최국인 일본에게 자동으로 올림픽 본선 출전권이 부여된다. 2단계는 올림픽 세계예선전(본선 출전권 3장), 3단계는 올림픽 국제예선전(3장), 그리고 마지막 4단계가 각 대륙별 올림픽 예선전(5장)이다.

이 개편안이 최종 확정될 경우, 한국 남자배구는 이번에 세계선수권 본선 출전권을 따지 못했기 때문에 2단계와 3단계인 도쿄 올림픽 세계예선전과 국제예선전 출전도 어려워진다.

두 대회의 출전 자격이 세계랭킹을 핵심 기준으로 부여되기 때문이다. 한국 남자배구가 두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현재 세계랭킹 20위인 중국은 물론, 16위인 호주보다 앞서야 한다. FIVB가 지난 7월 7일자로 발표한 세계랭킹에 따르면, 16위 호주(60점)과 21위 한국(46점)의 랭킹 점수 차이는 14점이다.

그런데 호주는 지난 7월 호주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아시아 예선전 B조에서 일본과 함께 본선 출전권을 획득했다. 반면, 한국은 이번 세계선수권 아시아 예선전 A조에서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더군다나 5개 출전 팀 중 카타르에게도 밀려 4위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겼다.

그 결과 향후 2018년 세계선수권 대회 성적이 반영되어 발표될 세계랭킹에서 한국 남자배구는 큰 폭의 추락이 불가피해졌다. 지난 2014년 세계선수권에서 얻었던 랭킹 점수 30점에서 무려 20점 가량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호주와 격차도 더 크게 벌어지게 됐다.

가장 중요한 대회에서 번번이 '최악의 성적'

남자배구는 지난 2013년 일본에서 열린 2014 세계선수권 아시아 예선전에서 D조 1위를 기록하며 세계선수권 본선 출전권을 따냈다. 당시 대표팀은 홈팀 일본의 국가적인 응원 열기를 뚫고 3전 전승을 기록했다.

그러나 4년 후에 열린 2018 세계선수권 아시아 예선전에서 본선 진출조차 실패하며, 2014년 세계선수권에서 벌어놓은 점수를 대거 날려버린 것이다.

2016년 리우 올림픽을 앞두고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지난 2015년 8월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 대회 8강전에서 한국은 일본에게 뼈아픈 패배를 당한 후 최종 성적 7위를 기록했다.

그러면서 그 대회 3위를 한 중국과 세계랭킹 순위가 뒤집히는 바람에 리우 올림픽 세계예선전 출전권을 중국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결국 남자배구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이후 4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지금도 배구팬들은 당시의 초라한 성적을 '테헤란 참사'라고 부른다.

올림픽 출전과 관련이 깊고, 제대로 실력을 검증할 수 있는 국제대회에서 남자배구는 번번이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웃지 못할 패착도 발생했다. 남자배구는 지난 1일 끝난 아시아선수권 대회에서 4강에 들어가면서 2019년 아시아선수권에서 오히려 불리해졌다.

김호철 남자배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이번 아시아선수권에서 4강에 들어야 한다며 전력을 다한 이유는 분명했다. 가능성은 낮지만, 혹시라도 2019년 아시아선수권에 도쿄 올림픽 출전권이 부여될 경우를 대비해 강호들을 피하는 유리한 대진표를 받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란, 호주, 중국, 대만 등 다른 아시아 강호들은 생각이 달랐다. 이들은 아시아선수권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반면, 세계선수권 아시아 예선전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총력을 쏟아부었다.

결국 이란, 호주, 중국, 대만은 이번 아시아선수권 4강 진출에 실패했고, 이들은 2019년 아시아선수권 8강에서 서로 만나지 않게 된다. 반면, 이번 대회 4강에 진출한 한국은 2019년 아시아선수권 8강에서 이들 강호 중 한 팀과 만날 수밖에 없게 됐다.

끝없는 추락, '배구협회·프로구단 책임' 크다

물론 부진의 이유는 있다. 2015년 아시아선수권 참사에는 핵심 공격수들이 대거 부상으로 빠진 게 컸다. 출전한 선수들도 크고 작은 부상으로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다. 이번 2017 세계선수권 아시아 예선전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란, 중국도 일부 주전 선수들이 빠졌다.

결국 한국 남자배구가 아시아에서조차 변방으로 밀려난 가장 큰 원인은 실력에서 세계 강팀들과 비교해 크게 뒤처져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한때 남자배구도 세계적인 흐름에 따라가 보려는 시도를 한 적이 있다. 지난 2015년 말과 2016년 초 당시 대한배구협회(아래 배구협회) 지도부가 남자배구 대표팀을 스피드 배구로 전환하기로 선언하고, 고교·대학의 장신 유망주들을 국가대표로 대거 발탁해 겨울철 특별훈련을 실시한 바 있다.

그리고 그 선수들이 현재 대학과 청소년 대표팀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그러나 1년도 채 안돼 배구협회 집행부 해임 등 혼란한 사태를 거치면서 그런 시도조차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국가대표팀 선발과 운영을 책임지는 배구협회는 최근에도 대표팀 부실 지원, 지도부 인사들의 파벌 싸움 등 숱한 실책과 구설수에 오르내리며 대표적인 '무능·무책임' 체육단체로 인식된 지 오래다. 배구팬은 물론 일반 네티즌까지 '당장 해체하라'는 비판이 쏟아져 나올 정도로 신뢰를 상실했다. 그런 상황에서는 어떤 시도도 힘을 받을 수 없다.

프로배구를 주관하는 한국배구연맹(KOVO)과 남자 프로 구단들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외국인 선수 위주의 V리그 풍토가 국내 선수들의 경기력을 약화시킨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대표팀 핵심 선수들의 V리그 올인-부상과 재활-국가대표 이탈이라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데도, 대책 마련의 소식은 없다. 오히려 대표팀 소집 때만 되면 이런저런 이유로 소속팀 선수 빼내는 데 더 신경을 쓴다. 그 때문에 대표팀 차출에 적극 협조해준 구단만 손해를 보는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유망주 발굴과 육성에 가장 효과적이라는 프로 구단의 연고제와 클럽 시스템을 하루 빨리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나오고 있고, KOVO도 동의하고 있다. 그럼에도 실천의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국제대회의 성적이 결국은 프로 리그의 흥행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프로 구단과 감독들이 '나만 살면 된다'는 단견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그 끝은 '공멸'일 수밖에 없다.

앞서가는 세계 강팀, 뒷걸음질 한국 남자배구

근본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한국이 올림픽 본선에 나가기 위해서는 실력 면에서 세계 강팀들의 수준에 근접해 가야 한다. 그것 이외에 다른 방안은 묘안도 해결책도 될 수 없다.

무엇보다 세계 강팀들과 권위 있는 국제대회에서 정면 대결을 자주 펼치는 게 급선무이다. 세계 강팀들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그들과 직접 맞붙는 것만큼 효과가 큰 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란, 호주, 일본, 중국 등 아시아 강호들이 아시아선수권을 포기하다시피 하고, 세계선수권 티켓 획득에 총력일 기울인 것도 그 때문이다.

또한, 세계 강팀들이 갖추고 있는 배구 스타일이나 특징과 비교해 크게 뒤처진 부분을 시급히 보완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 선수들 특징에 맞게 잘 접목해야 한다.

현재 남자배구 세계 강팀들의 특징을 요약하면 '스피드 배구, 장신화, 강서브'다. 그러나 한국은 이 3가지 모두 현격하게 뒤져 있다. 세계 강팀들은 3개의 무기를 다 갖추고 경기에 나서는데, 한국은 아무 것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이도 저도 아닌' 배구를 하고 있다.

스피드 배구는 남미·유럽에 비해 10년 이상 늦었다. 최근 국가대표와 일부 프로·대학에서 스피드 배구를 팀의 색깔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완성도 면에서 강팀들과 차이가 있다. 일본 등 아시아 강호들보다 떨어진다. 강서브는 연구하고 노력하면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부분이지만, 여전히 미흡하다.

장신화 부분은 가장 상태가 심각하다. 세계 수준과 너무 벌어져 있다. 여기서 장신화란 단순히 신장만 큰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유럽·남미의 배구 강호들은 장신이면서 스피드·파워·테크닉도 뛰어나다.

리우 올림픽에 출전한 12개국 센터 전원(36명)의 평균신장은 204.1cm다. 2017 월드리그 1그룹에 속한 12개국 주전 센터 36명(팀당 3명)의 평균신장은 205.5cm나 됐다. 대한민국 월드리그 국가대표 주전 센터 3명의 평균신장은 198cm다. 세계 강팀들 센터진에 비해 무려 7cm가 작다. 아시아에서도 한국 남자배구의 센터진은 사실상 '최단신'이다. 심지어 한국 월드리그 대표팀은 출전 엔트리 전체 14명 중에서 200cm가 넘는 선수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아시아에서도 중위권 밑으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들이다. 특히, 한국 배구가 장신 유망주 발굴·육성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지적은 뼈아픈 대목이다.

'현실적' 뒤에 숨어버린 '무능과 퇴보'

이런 상황임에도 한국 배구계는 '현실적'이라는 미명 하에 세계 강팀들과 격차를 좁히려는 시도를 외면한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 남자배구가 세계선수권이나 올림픽 세계·국제 예선전 출전에 힘을 쏟기 보다는 2019년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에서 도쿄 올림픽 본선 티켓을 따내는 게 현실적'이라는 주장이다.

김호철 감독은 세계선수권 아시아 예선전을 위해 이란으로 떠나기 직전인 지난 6일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솔직한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올림픽 세계·국제 예선전에 가서 (도쿄 올림픽) 본선 티켓을 딸 가능성은 전혀 없다"며 "2019년도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에서 본선 티켓을 따지 못하면 (올림픽 출전이)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은 우승팀 1팀에게만 본선 티켓을 주기 때문에 이란까지 나오면 힘들다"며 "그러나 이란은 그 전 대회에서 본선 티켓을 따낼 수 있다. 그 정도 수준은 된다. 그렇게 될 경우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은) 호주, 중국, 한국의 3파전이 된다. 그런 쪽에 기대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어차피 한국 남자배구는 세계랭킹이 떨어지나 안 떨어지나 똑같다"며 "이란을 빼고 나머지 아시아 팀들의 동양 배구는 유럽·남미 등 세계 배구 수준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못 박았다.

이는 비단 김 감독만의 생각은 아니다. 배구협회 지도부를 비롯해 배구계 인사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과연 이런 논리가 현실적일까. 그럴 수도 있지만, 동시에 비현실적이도 하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V리그 시스템에 안주하다 국제무대에서 퇴보의 길만 걸어 온 한국 남자배구에게 적용될 말은 더욱 아니다.

우선 아시아 국가에게 본선 티켓이 4장이나 부여된 세계선수권 출전권도 못 따면서 오로지 우승팀 1팀에게만 본선 티켓이 부여되는 도쿄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에서 올림픽 출전권을 딸 수 있다는 가정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이란의 수준 역시 황금세대의 노쇠화 등으로 최고 정점에서 꺾이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여전히 아시아에서는 최강이지만, 올림픽 세계·국제 예선전의 방식으로 볼 때 이란이 본선 티켓을 따낼 가능성은 생각보다 높지 않다. 도쿄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에 이란·호주·중국 등 강호들이 모두 출전하는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

오히려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에서 우승하기 위해서라도 한국 남자배구의 현재와 작별할 필요가 있다. 세계 강팀들과 실력 격차를 좁힐 수 있도록 국가대표팀의 배구 스타일·선수 선발·운영 방식 등을 시급히 대혁신해야 한다는 주장이 더 상식적이고 현실적일 수 있다.

이란이 지금은 세계 강호 수준으로 올라섰지만, 10년 전까지만 해도 아시아 중위권 팀이었다. '우리는 어차피 안된다'는 생각으로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무능과 무기력을 감추고, 퇴보만 초래할 뿐이다.

최근 배구팬은 물론 일반 네티즌까지 배구협회를 더 이상 이대로 놔둬선 안된다는 비판이 들끓고 있다. 근원적인 처방이 절실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에 못지않게 국가대표팀의 나아갈 방향과 운영에 대한 사고방식도 바뀌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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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배구 V리그 올림픽 배구협회 김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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