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VEB 아레나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대한민국 대 러시아의 경기. 4-2 패배로 경기가 끝나자 대한민국 선수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2017.10.8

7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VEB 아레나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대한민국 대 러시아의 경기. 4-2 패배로 경기가 끝나자 대한민국 선수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2017.10.8 ⓒ 연합뉴스


포기하지 않고 종료 직전에 2골이나 따라붙었다는 것은 분명히 칭찬해야 한다. 하지만 수비수들의 조직력은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었다. 선수 개개인의 실력이 어느 정도 검증된 상태에서 해외 클럽 팀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기에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비슷한 실수로 연거푸 실점했다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태용 감독이 이끌고 있는 한국 남자축구대표팀이 우리 시각으로 7일 오후 11시 모스크바에 있는 아레나 CSKA에서 벌어진 러시아와의 평가전에서 2-4로 완패하며 수비 조직력 면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냈다.

가변성과 안정감 사이

곡절 끝에 월드컵 본선에 올랐다면 평가전을 통해 어느 정도 경쟁력을 보여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물론 상대 팀이 2018 FIFA(국제축구연맹) 개최국 러시아였기 때문에 매우 까다로웠던 것은 사실이다. 알렉산드르 코코린, 표도르 스몰로프, 알렉세이 미란추크 등 공격수들의 수준이 매우 높기에 한국 수비수들이 곤욕을 치를 것이라 예상했던 부분이다.

하지만 신태용 감독을 비롯한 한국 남자축구 대표팀의 코칭 스태프는 안정감보다는 가변성에 중점을 뒀다. 그것은 심각할 정도로 패착이었다. 주장 완장을 찬 장현수를 세 명의 수비수 자리에 고정시키기 보다는 과감하게 앞으로 끌어올려 변형 쓰리 백 시스템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그동안 주로 센터백 역할을 맡았던 왼발잡이 수비수 김영권을 왼쪽 윙백으로, 공격형 미드필더 역할을 주로 맡았던 이청용을 오른쪽 윙백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이 사실만으로도 이번 신태용호의 평가전 수비 측면이 '가변성'에 무게를 뒀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후반전 중반 선수 교체 이후에는 아예 장현수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끌어올리며 포 백으로 전환하기도 했으니 적어도 세 가지 이상의 수비 시스템을 선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신태용호는 가변성만을 추구하다가 안정감을 놓치는 어리석음을 드러냈다. 전반전에 두 차례나 수비 라인에서 심각한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만으로도 이 문제점은 분명했다. 25분, 권경원과 김주영이 어이없게 부딪치면서 공을 잃어버렸다. 그 순간 넘어져 있던 러시아 골잡이 알렉산드르 코코린이 벌떡 일어나 왼발 슛을 날리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코코린의 밸런스가 흐트러진 상태였기에 유효 슛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두 수비수의 충돌은 아찔함 그 이상이었다.

그리고 3분 뒤에 골키퍼 김승규와 수비수 권경원의 골킥 처리가 잘못되어 곧바로 역습을 당했다. 여기서도 알렉산드르 코코린이 결정적인 오른발 슛을 날렸는데 너무 높게 차 올린 나머지 크로스바를 크게 넘어가고 말아 한국이 실점하지 않았지만 도저히 눈을 뜨고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었던 것이다.

축구가 골만 넣으면 되는 것인가?

전반전 두 차례나 아찔한 실수도 모자라 첫 실점과 두 번째 실점을 거의 비슷한 실수로 내주며 신태용호는 부끄러운 수비의 민낯을 드러내고 말았다. 44분에 오른쪽 코너킥으로 첫 골을 내줄 때 기본적인 대인 방어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골을 넣은 표도르 스몰로프가 프리 헤더였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그렇게 체격 조건 좋은 경계 대상 선수를 따라서 함께 점프한 한국 수비수가 1명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한국은 55분에도 똑같이 오른쪽 코너킥 세트 피스로 한 골을 더 내줬다. 코너킥 가까운 쪽 포스트로 경계 대상 선수인 알렉산드르 코코린이 이동하며 이마로 공을 돌려놓았고 이를 뒤늦게 따라가던 김주영의 몸에 맞고 추가골이 들어간 것이다.

김주영은 1분 뒤에도 허둥거리며 달려가다가 어이없는 자책골을 하나 더 발로 차 넣었다. 기본적으로 한국 수비수들의 커버 플레이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증거다. 이른바 '세컨 볼' 상황을 효율적으로 커버하는 수비 조직력 훈련이나 역할 나누기가 제대로 이루어졌는가를 의심하게 만드는 장면이 계속 드러난 것이다.

83분에 후반전 교체 선수 알렉세이 미란추크가 왼발로 가볍게 밀어넣어 점수판을 4-0으로 만드는 순간에도 한국 수비수들은 자신이 커버해야 할 공간을 제대로 찾아가지 못했다. '오재석-권경원-김주영-이청용'으로 구성된 포 백 시스템을 쓰고 있는 시간대였지만 골키퍼 김승규가 가까스로 쳐낸 공을 따라서 커버 플레이를 펼치는 수비수들이 보이지 않았다.

리베로 역할을 맡은 수비수에게 중책을 맡기는 '변형 쓰리 백 시스템'도 좋고, 풀백을 중심으로 측면 공격을 과감하게 지원하는 '포 백 시스템'도 좋다. 이들을 적절하게 섞어서 쓸 수 있는 가변성과 유연성을 추구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런데 이러한 수비 시스템이 잘 이루어졌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우선 안정감을 담보하는 조직력이 준비되어야 한다. 여기서 개선 방향을 찾지 않고서는 유능한 미드필더와 공격수들을 보유하고도 종이 호랑이라는 비아냥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신태용 감독은 간판 공격수 손흥민을 거의 프리 롤로 돌렸다. 황의조에게 실질적인 원 톱 역할을 맡기고 손흥민은 측면 공격, 중앙 공격, 수비 가담 역할까지 누구보다 바쁘게 뛰어다녔다. 특히, 전반전에 만들어낸 세 차례의 슛 기회에서 자신이 직접 유효 슛을 왼발로 날린 것(33분) 말고도 권창훈의 왼발 슛(18분)과 구자철의 오른발 중거리 슛(42분)이 만들어지기까지 매끄러운 연계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많이 늦었지만 신태용호는 비로소 마수걸이에 성공했다. 87분에 이청용의 오른쪽 크로스를 받은 수비수 권경원이 이마로 A매치 데뷔 경기 데뷔 골을 터뜨렸고, 후반전 추가 시간 3분 가까이 되어서 이청용의 재치있는 전진 패스를 받은 교체 선수 지동원이 감각적인 방향 바꾸기 오른발 슛을 성공시켰다.

신태용호는 이렇게 의미있는 골들을 2개나 뽑아냈지만 빛바랜 골들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허술한 수비 조직력 앞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세계 최고의 공격수들과 직접 만나야 하는 월드컵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이 부분은 가장 비중있게 다뤄야 할 부분이다.

'선 수비, 후 역습'이라는 축구장의 이야기가 왜 만들어졌는가를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11월 이후의 A매치를 위해서도 국내파, 해외파를 막론하고 신태용 감독이 추구하는 수비 시스템 하나라도 듬직하게 정착시키기 위해 신중한 선수 선발과 그들에게 조직력을 불어넣는 훈련 프로그램이 도입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신태용호는 스위스로 건너가서 10일 모로코와 두 번째 평가전을 치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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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남자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결과(7일 오후 11시, 아레나 CSKA-모스크바)

★ 러시아 4-2 한국 [득점 : 표도르 스몰로프(44분,도움-알렉산드르 사메도프), 김주영(55분,자책골), 김주영(56분,자책골), 알렉세이 미란추크(83분) / 권경원(87분,도움-이청용), 지동원(90+3분,도움-이청용)]

◎ 한국 선수들
FW : 손흥민(79분↔남태희), 황의조(63분↔지동원), 권창훈(79분↔황일수)
MF : 김영권(63분↔오재석), 구자철(70분↔박종우), 정우영(63분↔기성용), 이청용
DF : 권경원, 장현수, 김주영
GK : 김승규
- 경고 : 쿠쟈에프(8분), 스몰로프(74분) / 정우영(63분)
축구 신태용호 러시아 월드컵 이청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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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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