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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도 없고, 이렇다 할 롤모델도 없는 스물다섯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인생의 의미를 물어본다면? "공부하기도 바쁜데 그걸 고민하기가..." 아니면, "사실 그렇게 깊게 생각해 보진 않았지만, 사람들이랑 사는 맛이 인생의 의미가 아닐까요?" 정도로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안경에 김이 서리면 닦아내듯이, 좀 더 또렷하게 대답하고 싶었다. 막연한 생각들도 좀 정리해보고. 시간 여유도 별로 없고, 철학책이 항상 어려웠던지라 매번 졸기만 해서 제일 가벼운 책을 골랐다. 보라색의 아담한 이 철학책은, 이동하는 시간에 읽기 제격이었다.

출판사 필로소픽은 <러셀 교수님, 인생의 의미가 도대체 뭔가요?>를 '대중적으로 글을 쓰는 철학자 줄리언 바지니가 삶의 의미를 탐구하는 입문서이다. 철학과 영화, 문학, 음악 등 다양한 사례를 활용해 삶의 의미라는 커다란 물음을 쉽고 명료하게 분석해 나간다'고 소개한다.

이 책의 제목은 서문에서 나오는데, 한 택시기사가 러셀 교수에게 "인생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물은 데서 시작된다. 안타깝게도 고명하신 러셀 교수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고 한다. 저자는 인생이 너무나 거창하거나, 아니면 너무나 어려워서 대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그래서, 나는 이 보라색 책이 다루는 인생에 대한 '엄청난 질문들'을 꽤 심각하게 통찰해 보았다. 나의 인생에는 좁은 길목과 내 뒤편에 드리운 그림자 정도가 전부이지만, 내가 어떠한 존재인지는 깨우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러셀 교수님 인생의 의미가 도대체 뭔가요?> 줄리안 바지니 지음.
 <러셀 교수님 인생의 의미가 도대체 뭔가요?> 줄리안 바지니 지음.
ⓒ 필로소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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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줄리언 바지니는 러셀 교수가 대답하지 못한 이유를 이해시키기 위한 여정의 첫 번째로 우리 존재는 어떠한 목적이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유신론자에겐 '신'을 믿는 것 자체가 바로 존재의 이유이기 때문에 매우 단순한 질문일 것이다.

반면, 인간은 '종'의 발전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특히, 생명의 발생은 다양한 유기물의 무작위적인 배합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고, 심지어 리처드 도킨스는 인간은 진화를 매개하기 위한 이기적인 유전자들의 도구라고도 정의 내린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100년이라는 시간은 '종'의 관점으로나, '신'의 관점으로 볼 때 '발버둥' 치는 순간 정도로 보여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러한 사실들이 현재 우리의 삶에 대한 방향의 전부를 결정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별다른 목적 없이 존재하게 된 돌조각이나 접착제가 나중에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에 의해 목적을 부여받을 수도 있다. 최초의 목적이 영원한 목적이 되는 것도 아니고 최초에 목적이 없었다고 해서 영원히 목적이 없는 것도 아니다. 목적은 획득 될 수도, 없어질 수도, 변경 될 수도 있다."

태어날 때부터, 우리에게 100년 인생 로드맵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현재 벌어지는 모든 상황을 우연이라고 보기도 참 애매하다. 한 마디로, 인간의 관점에서 삶의 과정을 하나의 존재나 목적으로 '비약'하기는 무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를 '대자(對自)'(스스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존재라고 이야기한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1인칭 시점에서 바라본 '인생'은 항상 복잡하지 않던가. 슬기롭게 순간순간을 살기위해 유연해져야 하듯, 상황에 따라 도끼로 쓰이는 날카로운 돌조각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쓸모없이 굴러다니는 돌조각으로 남아있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타우마제인'이라고 하던가. 세계가 어떠하다는 것에 대한 일반론적 해석을 삶에 곧장 적용하기 보다는, 세계가 존재하는 것 자체에 대해 경이로움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겸손함이 우리 개개인에게 유익할지도 모른다.

'대자' 존재에게 '이타주의'는 무엇일까?

"인생은 그 자체로 살 가치가 있다. 내 삶이 그 자체로 살 가치가 있다는 주장이 아니라, 인간들(어쩌면 몇몇 동물들)의 삶이 살 가치가 있다는 주장이다."

앞서 말했듯, 우리의 삶을 추상적인 개념(종, 우주, 신)으로 환원하는 것에서 벗어나서, 그 자체로 존재하는 가치 있는 '인간'에 마음이 간다면, '나' 이외의 존재들이 가지는 '삶'에 대해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저자는 '이타주의'가 모두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는 가치를 가진다고 주장한다. 여러 경험에서 드는 생각이지만, 타인과의 성숙한 관계에 필요한 이타주의는 무궁무진해서 모두 함께 의미 있는 인생을 추구할 수 있는 희망의 고리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이타주의의 목적은 그저 돕는다는 활동 자체가 아니라 진정한 도움을 주는 데에 있다. 그렇지 않다면 길을 건널 필요 없는 노인이 길을 건너도록 돕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도움은 바람직한 결과를 낳을 때만 도움이다."

일반적으로 이타주의에서 '행복'이라는 감정은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하지만, 행복을 위해 남을 돕는 것과 남을 도울 때 행복해지는 것의 어감 차이가 있듯이, 저자는 이타주의는 도구가 아닌 하나의 '실천'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때론 희생도 필요하다고 한다.

얼핏 생각해보면, 행복에 '희생'이 필요하다는 부분은 모순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울지마 톤즈>의 이태석 신부, 거리의 아픈 이들을 돌보는 '의사들' 그리고 어디에선가 고통 받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헌신하는 '활동가'들을 만나보다 보면 그들은 자신의 '희생'을 행복으로 승화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듯하다.

이들의 행복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이질적일 수 있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보면, 일반 사람들이 느껴보지 못한 '행복'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인생의 의미에서 '행복'은 무엇일까? 

"행복의 가장 큰 장애물은 어쩌면 행복에 대한 현대 신화 자체일 것이다. 우리는 가진 것에 감사하는 법을 잊었고, 갖지 못한 것을 원망할 줄만 알게 되었다.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이, 더 많이 가져야 만족할 수 있는 갈망과 같아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원동력으로 '행복'을 꼽지만, 우리가 갈망하는 '행복'의 종류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고 있을까? 저자가 지적하듯 풍요로운 세계가 선사해준 여행과 음식, 쾌락주의적인 행위, 또는 소비 욕구를 해소하는 방법으로 취득된 '행복'은 아주 단조로운 색깔이 아닐까 싶다.

평생 흑백 사진으로 펼쳐진 세상을, 다채롭게 입혀줄 '행복'은 우리가 외면하고, 무시하고, 지나쳤던 곳에 있다. 거리에서 밤을 지새는 이들이 아프지 않기를 빌며 다음날 그들을 만났을 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의사들. 다른 국적이지만, 평생 배움을 취득하지 못한 이들에게 '공부'의 기쁨을 선사해주는 선교사. 세상이 변화될 수 있는 문턱을 끝내 넘지 못하더라도 함께 하는 동지들과 '김이 펄펄 나는' 사랑으로 치유되기도 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행복의 '색깔'을 나는 보았다. 저자가 주장하는 행복이란 바로 그러한 다양한 모습을 이야기 하는 것 아닐까.

"인생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이 문제가 소멸됨으로 깨닫게 된다. 이것이 오랫동안의 고민 끝에 삶의 의미가 분명해진 사람들이, 그 의미가 어디에 있는지 말하지 못하는 이유가 아닐까." - 비트겐슈타인(논리철학논고)

비트겐슈타인이 참 오묘한 말을 한 것 같다. 인생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문제가 소멸됨으로 깨닫게 된다는데, 우리에겐 그럴 일이 전혀 없다. 그래서 책과 함께 삶의 의미에 대한 깊은 주제들을 고민해 보았지만, 아직도 의미가 어디 있는지 말하지는 못하겠다.

러셀 교수에게 질문한 택시 운전사에게 동일한 질문을 받았다면, 나도 마찬가지로 대답하기가 꽤 난감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책 한 권 정도는 권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과거와 현재의 '나'를 좀 더 또렷하게 볼 수 있고, 잠깐 동안 '인생의 의미'라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테니.


러셀 교수님, 인생의 의미가 도대체 뭔가요?

줄리언 바지니 지음, 문은실.이윤 옮김, 필로소픽(2017)


태그:#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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