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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 오줌 누는 사람이 어떻게 앉아서 오줌 누는 사람에게 결재서류를 들고 가서 고개를 숙이라는 거야?'

1948년, 임영신이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여성으로서 상공부장관에 임명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불도저 같은 추진력으로 한국의 산업경제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은 임영신이었건만, 처음 장관이 되었을 때 부하 직원들은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임영신을 마뜩찮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뒤에서 이렇게 쑥덕거렸지요."(124, 125쪽)

김고연주가 지은 <나의 첫 젠더 수업>에 나오는 소위 임영신 장관의 '오줌론'에 얽힌 일화입니다. 참 재미있지 않아요. '페미니즘, 페미니스트'가 봇물처럼 등장한 지금이야 그런 일이 있었을까 싶지만, 그랬습니다. 아니 그보다 더했습니다. 과거엔. 저는 과거라고 말하지만 그게 현재라고 말하는 이들도 부지기수입니다.

'오줌론' 그리고 '기저귀론'까지

<나의 첫 젠더 수업> (김고연주 지음 | 창비 펴냄 | 2017. 11 | 201쪽 | 1만2000 원)
 <나의 첫 젠더 수업> (김고연주 지음 | 창비 펴냄 | 2017. 11 | 201쪽 | 1만2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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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부머이긴 해도(늙었지만, 고리타분하지만, 꼰대지만...) 저란 인간은 조금은 트인 사고를 하려고 노력중이거든요.

남녀, 어른아이, 동서양, 작은 것 큰 것 등등은 '틀림'이 아니고 '다름'이라고 너덜너멀 주절거릴 줄도 알고요. 다른 이들이 보면 시답지 않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나름 '틀리다' 보다는 '다르다'라고 말하며 살죠.

그러나 실제로 아직 여성에 대한 오롯한 편견을 마음 속 깊숙이 쭈그려 밀어 간직하고서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사람들이 멀쩡히 대로를 활보하는 게 우리들이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재이기도 합니다. 꼭 대한민국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그렇죠. 우리나라가 좀 심하고.

'오줌론'보다 더한 '기저귀론'도 있다는 거 아세요. 박진영의 <결정적 말실수>를 읽고 쓴 글에서 한번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관련기사: '상처받는 말에는 공통점이 있다'). 2003년, 기독교 대한 예수교 장로회 당시 총회장 목사가 신학교 채플시간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교단에서 여자가 목사안수를 받는다는 것은 턱도 없다. 여자가 기저귀 차고 어디 강단에 올라와."

이게 바로 '귀저귀론'입니다. 그 설교를 듣고 있던 학생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해야 했습니다. 여성 목사 안수를 허락하지 않는 교단 방침을 강력히 주장하려던 의도였던 것인데, 여성 폄하의 모범 답안지가 돼버린 것입니다. 우리 속에 내재된 여성비하가 얼마나 심각한지 그저 일례일 뿐이라는 생각입니다.

1948년과 2003년의 꽤 너른 시차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의 중심에는 아직 가시지 않은 남녀차별의 앙금이 도사리고 있답니다. 그건 남성들만도 아닙니다. 여성들 스스로도 '나는 여자니까' 하면서 지나쳐버리는 여성 비하적 태도가 많답니다.

여성성, 남성성은 만들어진 '젠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인식되어 생각 근저에 뿌리박은 이런 여성에 대한 편견의 근원이 어디로부터일까요. 저자는 그걸 차근차근 알려줍니다.

원래 아이들은 성에 대한 개념 없이 태어난다고 합니다. 그러나 '붉은색은 여자 아이 옷 색깔, 남자 아이는 장난감총, 여자 아이는 비비인형, 여자는 착하고 예쁘게, 남자아이는 울면 안 돼' 등 이분법적 고정관념이 살면서 터득되면서 정형화 되는 것이 '만들어진 젠더'라고 합니다.

'만들어진 젠더'라는 개념은 이미 1970년대 들어 풍미한 페미니즘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성'은 타고 나는 것이지만, 여성성이나 남성성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란 데 '젠더'라는 표현의 초점이 있죠.

저자는 '젠더'라는 표현을 위해 시몬느 보부아르를 차출합니다. 시몬느 보부아르는 <제2의 성>에서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표현을 합니다. 생물학적 '성(sex, 性)'이란 단어 대신 사회문화적 '젠더(gender)'라는 단어가 탄생하게 되는 계기가 되지요.

루이 마르몽텔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초상>(1763)
 루이 마르몽텔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초상>(1763)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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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애써 프란츠 빈터 할터의 그림 <빅토리아 여왕의 가족>(1846)과 루이 마르몽텔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초상>(1763)을 보여주면서 풍성한 드레스를 입은 앨프이드 왕자와 붉은 코트를 입은 모차르트의 아버지의 예를 들며 여자의 색과 여자의 옷이 있는 게 아니라고 일침을 놓습니다.

저는 '맞습니다. 맞고요!'라고 외칩니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 우리 사회는 거기까지 가진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책이 등장하는 것이지요. 저자는 하버드대학의 서머스 총장의 예를 들며, 여학생은 국어, 남학생은 수학에 강하다는 것도 거짓이라고 말합니다. 서머스는 연구 결과, 남자가 수학이나 과학에 강한 것은 성차별이나 양육 활동, 선천적 소질 때문이지 성 차이 때문이 아니라고 말한 분입니다.

저자는 인종, 성별, 종교에 따라 차별받는 것은 부정의함을 피력합니다. 외모에 신경 써 다이어트를 반복하는 어리석음도 지적하며 <뉴욕타임즈>의 '루키즘'을 언급합니다. 윌리엄 세파이어가 2000년 처음으로 쓴 단어로, 외모에 신경 쓰는 사회현상을 일컫는 말입니다. 성형공화국인 대한민국의 저력은 그 근본이 만들어진 젠더라는 게 저자의 의도로 읽힙니다.

'여자는 예쁘고 봐야한다'고?

다행히 정부가 성형 광고를 차단하겠다니 좀 늦긴 했지만 박수를 보냅니다. 이런 웃지 못 할 이야기를 알지 않습니까. "공부를 잘했다는데. 건 됐고 이뻐? 아버지가 부자라는데. 알겠고 그녀 예뻐? 캐리어우먼이래. 닥치고 예쁘냐고?" 이거 무슨 대환지 아시죠. 친구의 여친 소개에 기승전결 미인 타령입니다. 이러는 건 다 만들어진 우리 문화 탓은 아닐까요.

여자는 무조건 예쁘고 봐야 하고, 남자는 듬직하고 돈이 있어야 하고... 자, 이제 잠에서 깹시다. 저자는 그리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저자의 말로는 '문화적 문법'으로 '연애 각본'이 있답니다. 저자는 "연애 각본은 조금만 활용하도록 해요"라고 조용히 타이릅니다. 동화, 드라마, 영화가 은근히 가르쳐주는 각본에서 깨어나라고 주문합니다.

어린아이의 엄마인 저자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모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남녀직업이나 일이 따로 없고, 서서 누는 사람이나 앉아서 누는 사람이나 모두 생계 노동, 가사 노동, 자율 노동을 해야 행복하다고 프랑스 철학자 앙드레 고르를 끌어다 댑니다.

알파걸(공부, 운동, 인간관계, 리더십 등 다방면에서 탁월한 여성)을 요구하는 사회의 치졸함이 유리천장(여성의 고위직 승진을 막는 조직 내의 보이지 않는 장벽)과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만큼 능력이 없어 유리천장을 두껍게 쳤다고.

여자를 상사로 두기 싫어하는 유리천장의 사회에서 1948년 당시 '오줌론'의 당사자인 임영신 장관이 했다는 '사표 수리 준비설'을 추천합니다. '여자 장관에게 결재 받으러 오기 싫은 사람(남자)은 당장 책상을 정리하고 나가라. 사표 수리할 준비 되어있다'라는.

책을 읽은 저는 '여혐'의 세상에 말합니다.

"세상에서 사표를 쓰든지, '오줌론'을 들먹이지 말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하시오."

덧붙이는 글 | <나의 첫 젠더 수업> (김고연주 지음 | 창비 펴냄 | 2017. 11 | 201쪽 | 1만2000 원)
※뒤안길은 뒤쪽으로 나 있는 오롯한 오솔길입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의 오솔길을 걷고 싶습니다. 함께 걸어 보지 않으시겠어요.



나의 첫 젠더 수업

김고연주 지음, 창비(2017)


태그:#나의 첫 젠더 수업, #김고연주, #남녀차별, #여혐,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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