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방송사고의 주인공 <화유기>.

역대급 방송사고의 주인공 <화유기>. ⓒ tvN


1. <응답하라 1994>, 18회 방송 말미에 <코미디 빅리그> 일부 방송과 <로맨스가 필요해3> 예고편을 12분 넘게 반복.
2. <응답하라 1988>, 17회까지 방송된 후 높은 완성도를 위해서라며 휴방.
3. <도깨비>, 13회까지 방송된 후 역시 높은 완성도를 위해 스페셜 편성.
4. <화유기>, 컴퓨터그래픽(CG) 노출 등 후반 작업 지연으로 2회 만에 송출 중단. 최악의 방송사고. 촬영 중 스태프 추락 사고.
5. <슬기로운 감빵생활>, 역시 높은 완성도를 위해 휴방.

같은 실수가 반복된다. 약속을 매번 어긴다. 달라지겠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정작 바뀐 건 없다. 걸핏하면 '완성도'를 핑계 삼아왔다. 휴방은 비일비재했다. 그것도 갑작스러운 통보였다. 하지만 재미가 있었기에 시청자들은 눈을 감아줬다. '그래, 90분짜리 드라마를 매주 2편씩 만들어내는데 얼마나 힘들겠어.', '이렇게 재미있는 드라마를 만드는데 휴방쯤이야.' 그렇게 이해했다. 아니, 어쩌면 '방치'했다. 따끔하게 지적해야 했지만 '묵과'했다.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결국, 터지고야 말았다.

유명 작가 '홍 자매(홍정은·홍미란)'와 스타 배우 차승원·이승기의 만남. 중국 4대 기서의 하나인 <서유기>를 모티브로 한 판타지 드라마 <화유기>는 방송 전부터 큰 화제를 불러모았던 기대작이었다. 손오공, 사오정, 저팔계, 삼장법사, 우마왕 등의 캐릭터를 과연 어떻게 표현할지 몹시 궁금했다. 이승기는 '첫 방송 시청률이 10%가 나오면 재입대하겠다'는 파격적인 시청률 공약을 내세우기도 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쉽다고 해야 할까. <화유기>의 1회 시청률은 5.290%(닐슨 코리아 기준)를 기록했다.

'유치하다'는 평도 있었지만, 전반적인 평가는 '재미있다'였다. 익숙한 <서유기>의 구성을 데려온 덕분에 '판타지'라는 장르가 부담스럽지 않게 시청자들에게 스며들었다. 우휘 역의 차승원은 원숙한 코믹 연기와 특유의 분위기를 뽐내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손오공 역의 이승기도 악동다운 모습을 선보이며, 전역 후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매번 연기력 논란에 휩싸였던 오연서의 연기도 무난했다. 순풍에 돛 단 듯, 이대로 tvN의 역사에 길이 남는 드라마가 되는 듯했다.

'역사'가 된 <화유기>

 2회 만에 발생한 역대급 방송 사고를 어찌할 것인가.

2회 만에 발생한 역대급 방송 사고를 어찌할 것인가. ⓒ tvN


역사가 되긴 했다. '최악'으로 기록되는 역사 말이다. 지난 24일 방송된 2회는 한마디로 '누더기'였다. 60초로 예정된 중간 광고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러더니 <마더> <윤식당2>의 예고편이 전파를 탔다. 어처구니없는 기다림은 약 10여 분 동안 이어졌다. "방송사 내부 사정으로 방송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잠시 후 <화유기> 방송이 재개될 예정이니 시청자 여러분의 많은 양해 바랍니다"라는 안내 자막이 나왔지만, 결국 <화유기>는 엔딩조차 제대로 끝맺지 못한 채 방송을 종료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컴퓨터 그래픽(CG) 처리가 되지 않은 편집본은 민망함을 더했다. 스턴트 배우들의 와이어 줄이 고스란히 노출됐고, 쫄쫄이를 입은 귀신들의 모습도 전혀 CG 처리가 되지 않았다. 그 허접함에 시청자들은 드라마에 제대로 몰입할 수 없었다. 액자를 넘어뜨리는 실과 초록색 CG용 화면은 옥에 티를 찾아보라는 제작진의 덤이었을까. 문제는 우리가 봤던 <화유기> 2회는 '옥'도 아니었고, 그 흠집은 '티'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너무도 엄청났다는 것이었다.

파행은 계속됐다. tvN은 <화유기> 3회는 12월 31일에 정상 방송하되, 4회는 다음 주(1월 6일)로 미루는 결방 소식을 전했다. 또, MBC <구가의 서>를 공동 연출했던 김정현 감독을 B팀 감독으로 교체 투입했다. 더딘 촬영을 만회하겠다는 판단이다. 과연 <화유기>가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 당장 숨통은 트이겠지만, 전체적인 전망은 회의적이다. 방송 2회만 에 펑크가 난 상황이 1주 정도 시간을 번다고 해서 나아질까. 쫓기는 듯한 촬영 일정은 더욱 압박으로 다가올 것이다. 완성도는 기대하기 어렵다.

tvN은 바뀌지 않았다

 배우들의 노력은 공염불이 될지도 모른다.

배우들의 노력은 공염불이 될지도 모른다. ⓒ tvN


"이번 사건이 결코 드라마 제작에 종사하는 노동자 한 명의 안전사고가 아니다. 인권과 노동에 대한 존중이 없는 제작 현장은 어떤 성과로도 면죄부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 - 전국언론노조

한편, 26일 <화유기> 촬영 현장에서 세트 작업을 하던 스태프 A씨(MBC아트 소속)가 추락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tvN과 <화유기> 제작진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지난 23일, A씨는 JS픽쳐스의 미술 감독으로부터 '샹들리에 설치' 지시를 받았고, 피로가 누적돼 있던 상태에서 무리한 업무 지시를 이행하다가 3m 높이에서 떨어져 하반신을 크게 다쳤다. tvN은 이와 같은 사고가 있었음에도 방송을 강행했다.

27일, 전국언론노동조합은 <화유기> 제작 중단과 추락사고의 원인 및 책임을 규명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tvN는 "앞으로 촬영 현장에서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더욱 주의와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원론적인 대답을 내놓았지만, 그 대답을 곧이곧대로 믿긴 어렵다. 왜냐하면, tvN은 지난 6월 <혼술남녀>의 조연출 이한빛 PD의 사망 사건 이후 재발 방지를 약속했기 때문이다. 당시 tvN은 방송 제작 인력의 처우 개선을 위해 적정 근로 시간 및 휴식시간 등을 보장하겠다고 했었다. 물론 달라진 건 없었다.

그동안 tvN은 작품성과 신선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시청자들로부터 '신(新) 드라마 왕국'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차곡차곡 신뢰를 쌓아왔다. 하지만 그 위상이 와르르 무너졌다. 겉면은 화려했지만, 그 속은 곪을 대로 곪아 있었다. 드라마 제작 현장의 열악함은 여전했다. 거듭된 휴방과 반복되는 방송사고는 tvN이 처해있는 본질적인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멈춰 서서 제대로 된 진단을 내리고, 철저한 반성을 토대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또, 대충 넘어가려 해선 곤란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직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화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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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길을 가라. 사람들이 떠들도록 내버려두라.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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