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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목련, 개나리 등 화사한 꽃망울이 톡톡 피어오르는 4월의 봄날과 함께 남북의 문화교류도 활짝 기지개를 펴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남측 평양공연 '깜짝 방문'부터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북한의 풍경까지, 베일에 싸여있던 북녘의 모습이 발 빠르게 전해지고 있다. 앞으로 남북관계는 어떻게 풀려나갈까? 문화교류를 중심으로 향긋한 봄날을 전망해본다.    - 기자주

"평양에서의 시간이 여러분들의 마음에 뜻깊은 시간으로 간직되시길 바랍니다"

지난 3월 31일 승무원의 설렘과 들뜸이 그대로 묻어나오는 안내음성이 비행기 내부에 울려 퍼졌다. 이날 오전 10시 33분께 윤상 남북실무접촉 수석대표 겸 평양공연 예술단 음악감독을 비롯한 <2018 남북 평화 기원협력 평양공연> '봄이 온다' 남측 공연단 190여명을 태운 비행기가 평양을 향해 날아올랐다.

평양으로 날아간 비행기

김포공항에서 남녘을 출발한지 대략 34분 째 군사분계선(MDL)을 넘고 다시 30분을 더 날아 57분 만에 평양 순안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도착시간은 남측 기준 11시 30분, 북측 기준 11시였다. 평양의, 북녘의 시간은 남녘보다 30분 늦게 흐른다. 남과 북의 시간이 둘로 분단된 것이다. 여기에는 어떤 사연이 숨어있을까?

앞서 1908년, 대한제국은 동경 127.5도를 기준으로 한반도의 시간대를 설정했다. 당연히 남북의 시간대도 똑같았다. 그러다 일제강점기인 1912년, 일제는 일본 표준시 기준인 동경 135도에 맞춰 시간대를 변경했고 해방을 맞았다. 남측은 1954년 동경 127.5도로 시간대로 복귀했지만 5.16군사쿠데타 직후인 1961년 8월 동경 135도로 되돌아갔다. 냉전이 심화되며 미국의 '공산주의 방파제'로 편입된 일본의 시간대에 맞췄단 설이 제기된다. 한국군과 미군-자위대가 연계해 대대적인 합동군사훈련을 벌이기에 편리해졌단 지적이다.

북측은 해방 이후 쭉 동경 135도를 쓰다가 2015년 8월 5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을 통해 동경 127.5도로 돌아가며 이를 '평양시간'이라 불렀다. '일제가 강탈한 표준시를 되찾기 위해서'라는 취지였다. 북측은 우리민족이 주도해서 설정한 '민족의 시간대'를 회복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남녘과 다른 평양의 시간을 마주한 공연단은 시종일관 믿을 수 없다는 듯 조심스레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한편으론 확연히 다른 장면도 눈에 띄었다. 조용필과 그의 밴드 '위대한 탄생'은 13년 전 자신들을 안내했던 북측 안내원과의 해후에 10분 간 서서 친밀히 대화를 나눴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장관과 윤상 감독은 각각 '상대역'인 박춘남 문화상,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과 활짝 핀 표정으로 반갑게 힘찬 악수를 나눴다. 분단과 정전에 맞춰있어 '전쟁 위험'을 경고하던 시계바늘이 평화와 통일로 옮겨간 역사의 장(章)을 남녘의 모두가 보았다.

3일 오후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남북평화협력기원 남북합동공연 '우리는 하나'에서 소녀시대 서현과 북측 최효성이 사회를 보고 있다.
▲ 남북합동공연 사회 맡은 서현과 북측 최효성 3일 오후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남북평화협력기원 남북합동공연 '우리는 하나'에서 소녀시대 서현과 북측 최효성이 사회를 보고 있다.
ⓒ 평양공연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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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난 1일 동평양대극장에서 남측 단독공연, 3일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남과 북의 합동공연이 열렸다. 현장분위기는 '봄이 온다'에 걸맞은 북한 주민들의 따사로운 호응이 터져 나왔다는 후문이 들려온다. 삼지연관현악단이 남측을 찾아 서울공연을 할 때 등장한 '소녀시대' 서현이 사회를 맡았다.

서현은 "헤어질 때 꼭 다시 만나자고 약속을 했었는데 이렇게 빨리 약속을 지키게 될 날이 올 줄은"이라며 첫 말을 뗐다. 노래 '오르막길'을 부른 정인은 "마지막 공연에 같이 연주하니까. 지금까지 쌓여왔던 추억이 짧게나마 있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라며 소회를 밝혔다.

여러 차례 북녘을 찾은 가수 최진희는 "예전엔 함성이 없었어요. 그런데 함성과 함께 박수소리가 엄청 크게 터져 나와서 감격했어요. 한마디로 감동이었어요"라 소감을 말했다. 3일 공연을 마치고 뒤풀이자리에서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의 볼을 장난스레 꼬집고 서로 "언니, 동생"하며 함께 즐겼다는 그녀의 귀중한 후일담도 주목해 봄직하다.

최진희에 따르면 남측 공연단이 김정은 위원장과 인사와 악수를 나눈 뒤 촬영한 단체 기념사진은 각자 자유로운 위치에 서서 찍었다. '최고지도자인 김정은 위원장에 폐가 되지 않도록 당신은 여기에, 당신은 저기에' 같은 억지연출이 그려지지 않았단 설명이다.

'민족동질성 회복' 통일문학 군불

부모님이 함경도 출신 실향민인 가수 강산에는 노래 중간마다 북측 주민들에 사연을 전하며 쉽사리 말을 잇지 못했다. 강산에는 2일 옥류관을 찾아 냉면을 먹는 자리에서 "노래하는 중에 자꾸 불쑥불쑥 어머니 얼굴이 막 자꾸 떠오르고 이래가지고 애써 잊어버리려고 조금 힘든 순간이 몇 순간 있었지요"라고 당시의 먹먹함을 진솔하게 전했다.

각 무대를 바라보는 북측 주민들의 표현은 다채로웠다. 울먹이고, 얼떨떨하고, 심각하고, 환하게 웃음 짓고 가락을 타며 어깨춤을 추는 장면도 포착됐다. 혹여 북측 동포들에 폐가 될까  "실례가 안 된다면"이라며 조심스레 관객의 호응을 유도했던 윤도현의 걱정은 별 대수롭지 않은 것이었다. '통일의 봄'을 주제로 삼아 노래와 영상을 결합한 '영상문학'에 힘입어 메마른 듯했던 민족동일성 회복의 신호가 감지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동평양대극장 2층 특별관람석에서의 '단 둘 대화'가 사진에 포착돼 모두의 시선을 잡아끈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도 장관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은 각 무대가 끝날 때마다 편곡과 가수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며 남측 문화에 큰 관심을 보였다.

아울러 도 장관은 "통일문학을 다시 만들자"고 한 북측의 제안을 전했다. 도 장관은 북측이 연 환송 만찬에서 안동춘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이래 명맥이 끊긴 남북의 문학교류를 비롯해 문학잡지 <통일문학>을 다시 함께 만들자는 공감이 이뤄졌다고 한다.

3일 오후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남북평화협력기원 남북합동공연 '우리는 하나'에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왼쪽에서 세번째부터), 도종환 문체부 장관,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 등 참석자들이 '다시 만납시다'를 함께 부르고 있다.
▲ 손 맞잡은 남북 3일 오후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남북평화협력기원 남북합동공연 '우리는 하나'에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왼쪽에서 세번째부터), 도종환 문체부 장관,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 등 참석자들이 '다시 만납시다'를 함께 부르고 있다.
ⓒ 평양공연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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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도 장관이 주도하는 통일문학 재개는 도 장관의 개인사로만 좁혀 볼 때도 무척 감격스러운 일이라 의미를 더한다. 과거 정치인이 아니었던 시인 도종환은 민족의 통일을 열망하는 문예운동에 발 벗고 나선 바 있다. 2000년 6.15공동선언으로 남북 교류의 물꼬가 트인 뒤 2005년 7월 평양·백두산·묘향산 등지에서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에 도종환을 비롯한 남측과 북측의 문인들이 처음으로 모였다. 이를 밑돌삼아 2006년, 남북 단일 민간인 조직 '6·15민족문학인협회'가 결성됐다.

마침내 2008년 남과 북의 문인들이 선정한 문학작품이 나란히 실린 <통일문학>이 평양에서 발간됐다. 남측에서의 출판도 이뤄져야했지만 이명박 정부 통일부는 '이적표현물'이라며 제동을 걸었다. 당시 도종환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은 정부를 향해 "통일문학의 발을 묶고 있다"며 목소리 높였다. 결국 해방 이후 처음으로 남북 문인들이 한 마음으로 남과 북 양측의 주민들이 함께 읽을 수 있도록 구성한 <통일문학>은 2009년 3월을 마지막으로 발간이 중단되면서 흐지부지됐다.

지난 5일 JTBC와의 인터뷰에서 언급된 도 장관의 "주로 문화 체육을 얘기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포함해) 다 말씀드릴 수 없는 것도 있고요.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실 것" 등의 발언을 살펴보면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거치며 남북관계 정상화가 이뤄진 뒤 모종의 큼직한 문화교류이벤트가 펼쳐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이 "가을에는 '가을이 왔다'를 주제로 서울에서 공연을 하자"고 윤상 감독에 제안했단 점을 떠올려 보면 그럴 개연성은 충분하다.

평창겨울올림픽 당시 남측을 찾은 삼지연관현악단의 공연과 그에 대한 답방 형태로 북측을 찾은 남측 예술단의 공연은 '올림픽 교류'라는 틀로 대북제재를 우회하며 성사됐다. 향후 펼쳐질 문화교류의 모습은 퍽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대북제재 해소와 평화협정 체결을 거치며 북한이 미국을 비롯한 지구촌에서 널리 '정상국가'로 인정받고,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통일공동체' 코리아가 주도하는 문화공연의 품격이 훨씬 높아지리란 예상이다.

황성운 문체부 대변인은 지난 9일 브리핑에서 "구체적인 문화교류 방안 등은 정상회담 이후에 좀 더 구체적으로 논의될 수 있지 않을까"라며 기대감을 높였다. 남북 양측이 본격적인 관계정상화에 앞서 문화 물밑접촉에 발 빠르게 나서는 모습이다. 지금까지와는 격이 다른 남북관계정상화-북한의 국제무대 데뷔 '신호탄'에 향후 새롭게 열릴 통일문학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평양 봄날의 따스함, 서울 가을날의 시원함으로 이어지길

오는 4월 27일 역사적인 3차 남북정상회담과 5월 말 또는 6월 초순으로 예정된 북미정상회담을 향해 초침은 째깍째깍 바삐 움직이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과 리설주 여사가 직접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측 시간으로 고정된 판문점 평화의 집, 분단의 건물로 알려진 그 장소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와 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와 포옹하는 풍경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남측 판문점에서 열리는 정상회담의 장소선정은 남북 실무·고위급회담이 북측 판문점 지역인 통일각에서 열리고 있는 것과 균형을 맞춘 모양새다. 서로 다르게 흐르던 '민족의 분단된 시간'이 점차 하나가 되어간다는 상징적인 장면이 아닐까.

5일 남과 북의 련환(합동)공연에서 서현과 함께 공동사회를 본 최효성 조선중앙TV 방송원(아나운서)은 "통일의 숨결"을 언급했다. 조선노동당을 대변하는 조선중앙TV와 노동신문에는 김정은 위원장과 남측 공연단이 함께 찍은 단체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이를 남측 언론들이 인용해 보도하는 이색적 풍경도 펼쳐졌다.

가을엔 북한의 건국절인 9.9절 70주년, 10.4남북공동선언(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 11주년 등 굵직한 기념일이 있다. 우선 남북 북미정상회담이 끝난 5월에서 6월 초의 시계추는 6.15공동선언으로 이동한 뒤 8.15 광복절로, 다시 10.4로 이동할 것이다. 그리고 따스한 봄기운과 시원한 가을들녘을 배경삼은 남과 북의 문화교류는 민족의 만남과 통일을 끌어당길 것이다.

올해 6.15공동선언 18주년을 앞두고 6.15청년학생본부가 실시할 7회 6.15통일공모전의 참가규모도 대폭 확장될 전망이다. 한반도평화의 넘실거리는 봄을 타고 단편소설, 시, 수필 등 남과 북의 상호번영과 통일의 마음을 담아낸 작품들이 우후죽순 소개될 그날을 주목하자. 반공논리를 앞세운 상호비방이 아니라, 남과 북의 풍경을 절묘하게 뒤섞은 색다른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해 향긋한 앞날을 그려보잔 얘기다. 

'봄이 온다' 공연을 맡은 윤상 감독은 "삼지연관현악단과의 협연을 위한 편곡을 준비하면서 아이처럼 두근거림과 설렘을 감출 수 없는 경험을 했다"며 벅찬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실제로 공개된 윤상 감독, 현송월 단장, 탁현민 청와대 선임행정관이 함께 마주하고 리허설을 점검하는 영상에선 현송월 단장이 웃으면서 탁현민 행정관의 팔을 가볍게 툭 치며 "(좋은 무대 연출을 위해) 생각 좀 해보라"는 친근한 장면이 포착됐다. 분단으로 70년 넘게 대치하던 남과 북의 얼음장 같던 관계가 문화교류를 통해 포근하게 녹아내리고 있다는 확실한 신호다.

분단의 초침이 통일로 전환될 결정적 순간들이 도래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봄이 온다'를 선보인 남측 공연단에 "'가을이 왔다'를 주제로 서울에서 공연을 열자"고 제안했다. 도 장관은 이를 한반도평화정착을 바라는 북측의 적극적인 메시지로 해석했다.

가을은 우리민족에게 풍성하게 여문 오곡을 한꺼번에 거둬 축제를 벌이는 추수(결실)의 계절이다. 평창겨울올림픽으로 심은 문화체육교류를 씨앗으로 삼아 철조망과 지뢰밭으로 점철된 비무장지대를 걷어낼 그날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물론, 어쩌면 아직 닥치지 않은 힘든 가시밭길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는 4월 27일 3차 남북정상회담, 5월 말에서 6월 초순 역사적인 첫 북미정상회담이 확정된 만큼 '공수래공수거'가 될 일은 없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으로 한반도 허리에 휴전선이 그어진 이래, 65년만의 '역대급 가을'의 풍경을 가까운 사람들과 도란도란 주고받을 그날을 한껏 기대해보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주권방송>에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북한,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 #도종환, #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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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정세, 일본의 동향에 큰 관심을 두며 주시하고 있습니다. 적폐를 깨부수는 민중중심의 가치가 이땅의 통일, 살맛나는 세상을 가능케 하리라 굳게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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