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러시아 월드컵 포스터

2018 러시아 월드컵 포스터 ⓒ FIFA


이제 겨우 16강전이 진행 중이지만,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전통의 강자들이 잇달아 이른 시점에 '광탈'하는 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지난 대회 디펜딩챔피언 독일(피파랭킹 1위)이 사상 처음으로 조별 리그에서 탈락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진 데 이어, 준우승팀이었던 아르헨티나(피파랭킹 5위)도, 유로 2016 우승국이었던 포르투갈(피파랭킹 4위)도 각각 16강에서 고배를 마셨다.

이변의 가능성은 이미 월드컵 개막 전부터 감지된 바 있다. 월드컵 4회 우승에 빛나는 이탈리아(피파랭킹 19위)와 지난 대회 4강팀 네덜란드(피파랭킹 17위)가 유럽 지역 예선도 통과하지 못했고, 코파 아메리카 2연패에 빛나는 칠레(피파랭킹 9위) 역시 남미예선에서 초라하게 탈락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지난 2014 브라질 월드컵 4강 팀 중 살아남은 것은 아직 16강전을 치르지 않은 브라질(피파랭킹 2위) 한 팀뿐이다. 전통의 강자로 꼽혔던 팀들의 동반 몰락은 세계 축구의 판도가 또 한 번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전통의 강팀들의 추락, 공통점이 있다

강팀들의 몰락 원인에는 비슷한 공통점이 거론된다. 바로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 '오만함'이다. 한때 유럽을 호령하던 이탈리아나 네덜란드가 몰락한 것은 나란히 자국 리그의 쇠퇴와 세대교체의 실패, 현대 축구의 트렌드를 따라잡지 못한 전술의 경직성 등이 거론된다.

또한 월드컵 대회만 놓고 봐도 2000년대 이후 두드러지는 현상은 전 대회 우승-4강 팀들이 다음 대회에서는 여지없이 고전한다는 점이다. 이번 대회까지 최근 5번의 대회 중 전 대회 우승팀이 다음 대회 조별리그 통과조차 실패한 것도 무려 4번(2002 프랑스, 2010 이탈리아, 2014 스페인, 2018 독일)이나 된다. 아무리 강팀이라도 과거의 성공에 안주해 꾸준한 변화와 경쟁을 모색하지 않는다면, 상대 팀들의 철저한 견제와 분석에 공략당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브라질 대회 우승팀 독일은 러시아 월드컵 조별 리그에서는 멕시코와 한국에 패해 1승 2패에 그치며 최하위로 탈락하는 굴욕을 맛봤다. 특히 한국전 패배는 월드컵 전 대회 우승국이 아시아팀에 당한 첫 패배로 역사에 남았다. 외신들도 한국-독일전은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이변 중 하나로 꼽았을 정도다.

[월드컵] 돌파하는 손흥민 (카잔=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27일(현지시간) 러시아 카잔 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3차전 한국과 독일의 경기. 한국 손흥민이 드리블을 하고 있다.

▲ [월드컵] 돌파하는 손흥민 (카잔=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27일(현지시간) 러시아 카잔 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3차전 한국과 독일의 경기. 한국 손흥민이 드리블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독일은 영원한 우승 후보로 꼽힌다. 피파 랭킹 1위답게 세계적인 스타 선수들이 즐비한 데다 요아힘 뢰브 현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2006년 이후로는 각종 국가 대항전에서 항상 4강 이상의 성적을 거둬왔다. 하지만 거듭된 성공이 주는 방심과 매너리즘은 이번 러시아월드컵에서는 오히려 독으로 돌아왔다.

독일 축구는 필림 람, 바스타인 슈바인슈타이거, 미로슬라프 클로제 등 지난 월드컵 우승의 주역이었던 베테랑 선수들이 은퇴한 공백을 제대로 메우지 못했고, 사미 케디라, 토마스 뮬러, 메수트 외질, 토니 크로스 등은 이번 대회에서 하나같이 부진하며 하락세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르로이 사네 등 빅리그에서도 인정받은 재능있는 젊은 선수들을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했다. 소속팀에서의 실력보다 자신의 선호도에 맞는 선수들 위주로 보수적인 선수기용을 고집한 뢰브 감독의 선택은 대표팀의 전력이 오히려 정체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과거의 독일은 상대가 강팀이든 약팀이든 결코 방심하지 않고 끝까지 몰아붙이는 철두철미함이 강점이었다. 4년 전 브라질 대회 준결승전에서 홈팀 브라질을 7-1로 대파한 것이 대표적인 장면이다. 그러나 이번 월드컵에서의 독일은 그렇지 못했다. 한국전에서 상대를 얕보고 방심하다가 제대로 된 전력분석을 하지 않았다는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점유율은 높았지만 느리고 무딘 공격은 철저한 '선 수비, 후 역습' 전략으로 나선 멕시코와 한국의 조직력을 무너뜨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항상 급변하는 세계축구의 트렌드를 가장 먼저 수용하며 실리적인 축구를 구사하던 독일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아르헨티나, 4년 뒤가 더 걱정된다

[월드컵] 메시 막아내는 아이슬란드 얼음수비  (모스크바=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아이슬란드 에밀 할프레드슨(20), 호르더 맥너슨(18), 애런 군나르슨(17)이 지난 16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스파르타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러시아월드컵 D조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리오넬 메시(10)의 돌파를 저지하고 있다.

▲ [월드컵] 메시 막아내는 아이슬란드 얼음수비 (모스크바=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아이슬란드 에밀 할프레드슨(20), 호르더 맥너슨(18), 애런 군나르슨(17)이 지난 16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스파르타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러시아월드컵 D조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리오넬 메시(10)의 돌파를 저지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아르헨티나도 마찬가지다. 리오넬 메시라는 당대 최고의 축구 선수를 앞세워 정상에 도전했지만, 아르헨티나는 정작 지역 예선부터 고전을 면치 못하며 가까스로 러시아 무대를 밟았다. 비교적 무난한 조 편성을 받았지만, 조별리그에서도 아이슬란드에 비기고 크로아티아에 대패하는 등 체면을 구겼다. 최종전에서 나이지리아를 잡고 탈락 위기에서 극적으로 기사회생하기는 했으나, 16강전에서 또 다른 우승 후보 프랑스를 만나 끝내 명예회복에 실패했다.

아르헨티나는 경기력과 또 별개로 명실공히 이번 대회 최악의 팀 중 하나라고 할 만큼 구설수가 많았다. 아르헨티나는 대회 내내 경기가 풀리지 않으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비신사적인 플레이를 남발하는 모습으로 여러 번 물의를 일으켰다. 조별리그 크로아티아전과 16강 프랑스전에서 모두 패색이 짙어지자 상대 선수를 가격하는가 하면 넘어진 선수의 머리를 향하여 공을 걷어차는 행동도 나왔다.

비매너는 관중석에서도 이어졌다. 자국 대표팀을 응원하기 위하여 경기장을 찾은 아르헨티나의 레전드 디에고 마라도나는 관중석 내 흡연에 인종차별적인 제스츄어, 손가락 욕설 등의 기행을 일삼았다. 세계 언론으로부터 집중적인 비판을 받았고 FIFA로부터도 경고를 받았다. 일부 아르헨티나 팬들은 월드컵 기간중 경기장에서 상대 팬들을 집단으로 폭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많은 축구팬들이 아르헨티나의 탈락을 업보라며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이유다.

아르헨티나는 지금보다 4년 뒤가 더 걱정이다. 어느덧 서른을 넘긴 메시는 국가대표팀 은퇴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역시 월드컵 탈락과 함께 은퇴를 선언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축구 2연패를 차지하며 10여 년 넘게 아르헨티나 축구를 이끌었던 '황금 세대'들이 대부분 나이를 먹으며 4년 뒤 2022 카타르 월드컵에 전성기 기량을 유지하고 나설 수 있는 선수는 드물다. 하지만 현재 10대 후반-20대 초반의 젊은 선수들 중에 메시-이과인-아구에로-마스체라노같은 스타들의 뒤를 이을만한 대형 재목이 아직까지 보이지 않는다는 게 아르헨티나의 고민이다.

브라질이나 스페인, 잉글랜드, 프랑스 등 아직까지 살아남은 강호들도 안심할 분위기는 아니다. 세계 각국들의 전력 차가 많이 줄어든 이번 대회에서는 2010년의 스페인이나 2014년의 독일처럼 월등한 경기력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팀이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이제 겨우 월드컵 16강전이 시작된 상황에서, 벌써 피파 랭킹 상위 10위 팀 절반이 탈락했다. 이 추세라면 이번 대회에서는 기존의 월드컵 우승 경험이 없는 새로운 팀이 깜짝 우승을 차지할 가능성도 있다. 다음에는 또 어떤 강팀들이 러시아 무대에서 이변의 희생양이 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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