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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권 신공항 유치 문제가 지역 민심을 흔들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3차례나 입지 발표를 연기한 가운데 경남 밀양을 지지하는 경남·대구·경북·울산과 부산 가덕도를 지지하는 부산의 감정 싸움이 날로 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남권 신공항은 정말 필요할까? 지역민들은 신공항 유치에 사활을 건 지역 정치인들과 언론의 유치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오마이뉴스> 가 9~12일 부산·대구·밀양을 돌며 지역민심을 살펴봤다. [편집자말]
국토해양부가 동남권 신공항 입지선정을 마무리하겠다는 3월 말이 다가오면서 한나라당의 텃밭이자 영남의 두 주요 도시인 부산과 대구의 민심은 충돌 일보 직전이다.

국토해양부 3월, 신공항 입지 최종선정 마치겠다고 했지만....

동남권 신공항 건설 여론이 본격화된 것은 지난 2005년부터다. 1990년대 말부터 '김해공항 포화론'을 주장해왔던 부산시는 2005년 가덕도·녹산·김해·기장 중 한 곳에 신공항을 세우는 계획을 건설교통부에 제출했다. 한국교통연구원의 연구용역 결과 신공항은 편익/비용지수가 1을 넘지 못한 0.58로, 경제성이 낮은 것으로 나타나 사업이 유보됐다.

그러나 그해 10월 대구·부산·울산, 경남·경북 등 영남권 지자체들은 '영남권 경제공동체 구축'의 일환으로 영남권 신공항 건설을 공동추진하기로 합의하고 건설교통부에 영남권 신공항 건설을 공동 건의했다. 그러나 대구·경북은 이미 밀양에, 부산은 가덕도에 신공항을 유치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던 상황이었고, '경제성이 부족하다'는 건교부의 입장도 요지부동이어서 동남권 신공항 건설은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2006년 말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산을 방문해 허남식 부산시장, 영남권 상공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영남권 신공항 건설을 검토를 약속하면서 사업 추진은 급물살을 탔다. 지난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도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국토해양부는 2008년 3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 국토연구원에 여러 공항 후보지들에 대한 타당성 조사를 맡겼는데, 이 조사결과 최종 후보지로 남은 2곳이 부산의 가덕도와 경남 밀양의 하남평야였고, 이때부터 지자체간 대결이 격화됐다. 대구·경북·경남·울산은 밀양 하남평야를, 부산은 부산의 가덕도를 신공항의 최적 입지라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

현재 '동남권 신공항 입지평가위원회'가 평가지침을 마련하고 있고, 3월에는 신공항 입지를 선정하겠다는 것이 국토해양부의 방침이다. 그러나 청와대 등에선 제 3의 안인 '김해공항 확충론'도 거론되고 있다.

지난 9~10일 대구와 부산 곳곳을 다니며 들은 민심을 종합하면, 부산과 대구의 국회의원들이 저마다 지역민심을 들먹이며 '신공항을 유치하지 못하면 우리 지역의 한나라당 기반이 흔들릴 것'이라고 경고한 것은 엄살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신공항을 뺏기면 한나라당을 뽑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팽배한 것.

시민들은 그동안 지역 언론에서 많이 보도해온 탓인지 '밀양은 이래서 공항이 들어갈 수 없다' '이래서 가덕도는 공항을 지으면 안 된다'는 식으로 상대방 도시의 약점을 많이 거론했다. 특히 대한민국의 주요 개발축이었던 경부축을 대표하는 두 도시의 주민들이 '그동안 개발에서 소외돼 왔다'는 근거를 제시하는 것도 특이했다.

대구 범어 4거리에 걸려있는 신공항 유치 관련 현수막들.
 대구 범어 4거리에 걸려있는 신공항 유치 관련 현수막들.
ⓒ 안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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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 형평성 차원에서라도 신공항 갖고 와야"

신공항 문제에 대한 대구시민들의 목소리는 매서웠다. 9일 대구 시내 곳곳에서 만난 시민들은 열이면 열 '신공항은 꼭 대구로 와야 한다'고 대답했고 '절대로 부산에 뺏겨선 안 된다'는 정서가 강했다.

칠성시장에서 꽃을 파는 40대 최아무개 사장은 "큰 공항이 생기면 지금보다는 좀 나아지지 않겠느냐"며 "대구는 건설경기도 다 죽었고, 삼성이나 엘지 같은 대기업에서 하는 게 하나도 없고 전부 중소기업"며 "아무래도 공항이 가까이 생기면 생활에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최 사장은 이어 "대구에 일거리가 없어서 젊은 사람들이 전부 서울·울산·거제도 쪽으로 다 빠지고 학생들 빼면 남아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며 "대구 인구가 250만밖에 안 되는데 젊은 사람들이 계속 타지로 나가면 인구도 줄어들 게 뻔한데, 신공항이 생기면 대구 안에 있는 건 아니지만 좀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젊은이들도 신공항이 취직 자리를 만들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동성로의 한 커피집에서 만난 대학생 지아무개(22·여)씨는 "큰 공항이 가까이 생기면 취업할 자리는 좀 늘어나지 않을까 기대한다"며 "취업자리가 얼마나 생길지 확실히는 모르지만 인천공항의 경우 취업유발 효과가 크다고 들었는데 대구 가까이에 그런 공항이 생기면 일자리 걱정을 좀 덜 수 있지 않을까"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러나 지씨는 "큰 공항을 지으면 서울사람들이 다 내려와서 취업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신공항을 대구 가까이에 유치해야 한다는 사람들 생각의 저변에는 '대구가 발전에서 소외돼 있다'는 정서도 강했다. 또 대구지역 국회의원들이 지역발전을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원망스런 마음도 묻어 있었다.

지하철 중앙역에서 만난 이춘애(여·68)씨는 "지금은 뭐든지 다 서울로 집중되고 있어서 공정하지 못하다. 대구 사람들은 신공항을 염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부산에서는 밀양에 공항을 지으면 적자가 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하는 모양인데 그렇다 해도 지역 형평성 차원에서라도 밀양에 공항을 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씨는 "TV에 보니까 대구 시의원들이 국회에 가서 삭발을 하려는 걸 못하게 했다고 하는데, 대구 국회의원들은 그런데도 안 가고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지난 7일 대구·경북·경남·밀양 등지의 시·도의원 등이 국회 경내에서 삭발시위를 하려다 '국회의원의 입회가 없다'는 이유로 국회 경위들에게 저지당해 결국 삭발이 불발된 사건이다.

"신공항 뺏기면 이제 야당을 찍겠다"

칠성시장 인근에서 분식집을 하는 50대 사장은 "시의원·도의원들이 서울 가서 삭발하는데 거기에 대구 국회의원들이 한 명도 안 왔다고 하는데, 그런 거 보면 한나라당 사람들은 이제 안 찍어줘야 돼"라면서 언성을 높였다.

그는 신공항의 입지에 대해선 "글쎄 나야 생전에 비행기 탈 일이 없으니까 잘 모르겠는데"라면서도 신공항이 무조건 밀양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택시기사 이현인씨는 "아무 산업도 없는 대구에 이 정도는 해줘야지, 이명박 대통령 뽑아줄 때 우리는 표를 70% 가까이 몰아줬는데도 대구가 좋아진 게 있느냐"며 "대구는 항구가 없는 내륙이라 그동안 다른 항구도시들에게 추월만 당해왔지만, 신공항이 생기면 내륙의 물류거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신공항 유치 경쟁에서 부산이 이기게 되면 대구 지역정가에 미칠 영향이 크다고 했다. 이씨는 "6·2 지방선거에서 박근혜씨가 내려와서 10일 동안이나 달성군수 선거운동 해줬지만 한나라당이 안 되고 무소속이 된 것은 대구 민심이 변하고 있다는 지표"라며 "신공항뿐 아니라 과학벨트, 무슨 특구 같은 거 대구로 못 가져오면 대구 사람들이 변한다. 신공항 뺏기면 일단 내부터 야당을 찍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씨는 "가덕도에 짓는 것은 부산 혼자 다 먹으려고 하는 것이고, 밀양에 짓는 것은 대구·경북·경남·울산이 다 골고루 잘되자고 하는 것 아니냐"며 "밀양에 지으면 부산 사람들도 충분히 편하게 올 수 있는데, 굳이 부산만 다 먹으려고 하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고도 했다.

부산역 앞에 걸려있는 신공항 관련 현수막들.
 부산역 앞에 걸려있는 신공항 관련 현수막들.
ⓒ 안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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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신공항 못지키면 한나라당 달고 나와도 안심 못해"

신공항 유치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은 부산 시민들도 마찬가지였다. 10일 부산 시내 곳곳에서 만난 시민들 열에 일곱 정도는 '신공항은 당연히 부산에 와야 한다'라며 가덕도가 신공항 최적지임을 강조했다.

자갈치시장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한석주(60)씨는 "신공항이 자기 지역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목소리는 대구나 부산이나 비슷하지 않겠느냐"며 "아무래도 큰 (산업) 덩어리 하나가 들어오면 지역경제에 도움이 많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씨는 "부산이 명색에 제2의 도시인데 신공항이 여기로 오는 게 걸맞다고 본다"면서 신공항을 짓는데 가덕도가 최적지인 이유와 밀양이 취약한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는 그런 정보들의 출처에 대해 "지역 신문들에 아주 상세하게 나온다"며 "주변 사람들도 거의 같은 얘길 한다"고 전했다.

한씨는 신공항 유치활동과 관련한 지역출신 국회의원들의 활동에 대해 대구시민들과 마찬가지로 불만을 표했다. 그는 "이제사 좀 움직이는 것 같은데, 신공항과 관련해서 국회의원들의 활동이 미흡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신공항을 뺏긴다고 현역 의원들을 안 찍을 것인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자갈치시장에서 어물전을 하는 70대 이아무개씨는 "늙은 사람들이 뭘 아냐, 나는 내용을 잘 모른다"면서도 "이번 설에 애들이 와서 하는 얘길 들으니 부산에 꼭 와야 한다고 하더라. 가덕도에 신공항이 와야 부산이 계속 먹고 살 것이 생긴다고 하고, 안 그래도 부산이 발전이 안 되는데 신공항을 뺏기면 더 발전이 안 된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국제시장에서 잡화상을 하는 40대 박성규씨도 "김해공항이 장기적으로 수요를 감당하지 못한다고 하니 신공항을 짓는 것 아니냐"면서 "신공항은 부산에서 얘기가 나왔고 짓는다는 약속도 부산에서 받아낸 것인데 다른 지역에다 만든다면 공항 가로채기 밖에 안된다"며 "이걸 지켜내지 못하면 부산국회의원들이 한나라당 달고 나와도 안심 못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씨는 "밀양에 신공항 지어놓으면 밀양 사람들이 (소음 때문에) '밤에는 제발 비행기 오지 마라'고 데모할 게 뻔하다"며 "밀양에 틀림없이 고도제한이 생기게 되는데 밀양사람들이 이걸 생각을 못하는 거 아닌가 싶다. 나중에 후회할 것"이라고도 했다. 

"언론·정치권이 부채질" "공항 지을 돈으로 불우이웃 도왔으면"

그러나 부산시민들의 반응은 대구에서보다는 더 다양했다. '별 관심이 없다'거나 '밀양에 짓는 게 균형발전'이라는 대답도 나왔다.

자갈치시장의 한 40대 횟집 사장은 "나는 신공항에 대해선 별로 관심이 없다"며 "사람들도 크게 관심이 없으니까 구청에서 현수막을 만들어서 온데 만데 다 갖다 붙이고 그러는 거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부산에 신공항을 지으면 비행기 타는 사람들이야 좀 편해질지 모르겠지만 나는 별로 관심이 없고, 언론과 정치권에서 주민들한테 자꾸 부채질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국제시장에서 만난 원단 도매업자 2명도 "우리는 신공항에 대해선 잘 모른다. 당장 먹고 사는 게 급하다"며 말을 아꼈다.

50대 택시기사 전아무개씨는 "지금 이 지역에 욕심만 가득하다"고 과열된 신공항 유치전을 비판했다. 그는 "신공항을 못 가져오면 무슨 사단이 날 것처럼 하는데, 내 눈에는 다 지역 이기주의로밖에 안 보인다" "나는 항상 나라가 골고루 발전해야 한다고 보고 있는데, 타 지역에서의 접근성은 아무래도 밀양이 낫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전씨는 "밀양에는 기간산업도 없으니, 밀양도 잘 살게 하고, 대구도 울산도 잘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며 "공항이 가덕도로 가면 울산이나 경북 사람들은 지금 김해공항 가는 것보다 힘들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혹시 고향이 밀양이나 대구 경북 아니냐'고 물었더니 전씨는 "나는 마산이 고향이지만, 10년 이상 부산에서 살았고 앞으로도 부산에서 계속 살 것"이라고 답했다. 

계속해서 전씨는 "내 동료들도 그렇고 신공항 얘기가 많이 나오지 않는다. 정치권에서처럼 그렇게 시끄럽지 않다"고 전하면서 "신공항이 없으면 마치 망할 것처럼 하는데, 솔직히 필요한지도 모르겠고, 공항에 들어갈 돈이 한두 푼이 아닌데 그 돈으로 불우이웃돕기나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태그:#신공항, #대구, #부산, #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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