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영역, 운명, 진로 따위를 처음으로 열어 나가는 사람. 국어사전에 기재된 개척자의 의미다.

▲ 코리안 메이저리거의 선두주자 박찬호. 세월은 흘러 평범한 노장 투수가 됐지만 '개척자 정신'을 다시 발휘하길 기대해본다.
ⓒ 윤욱재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밟은 박찬호. 그가 청운의 꿈을 안고 태평양을 건널 때 성공을 점친 사람은 드물었다. 한양대 시절 박찬호는 빠른 볼 하나는 인정을 받았지만 최고 유망주로 통한 선수는 아니었다. 동기 중 대형 투수로 꼽혔던 임선동, 조성민이 억대 계약금설이 오가는 가운데 연고 구단 빙그레 이글스(현 한화 이글스)가 박찬호에게 제시한 계약금은 2천만 원에 불과했다.

역시 그의 메이저리그 도전은 쉽지 않았다.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처음으로 오른 빅리그 마운드.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단 두 경기만을 치른 그에게 날아온 건 마이너리그행 통지서였다. 흔히 마이너리그는 눈물 젖은 빵을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이러한 과정은 유망주들이 거치는, 대개 성장통이라 불리는 것이었다.

2년 뒤 다시 돌아온 박찬호는 무서운 성장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선발로 나와서 정상급 타자들을 삼진으로 처리하고 주먹을 불끈 쥐는 장면은 공중파 TV로 생중계됐고 새벽이든 점심 시간이든 그가 나오기만 하면 모든 시선이 집중됐다. 요즘 대만에 왕치엔밍 열풍이 부는 걸 보면 그때가 더욱 생각난다. 왕치엔밍 역시 대만 출신 메이저리거의 성공기를 쓰고 있는 개척자다.

@BRI@박찬호가 터전을 닦아 놓으니 국내에선 메이저리그 진출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한때 메이저리그 진출이 하나의 트렌드로 떠오를 만큼 빅리거를 꿈꾸는 선수들은 점점 늘어났고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한국 선수들을 보는 시선 역시 달라져 있었다. 개척자가 가져다 준 새로운 변화였다.

2000년엔 18승, 2001년엔 15승을 거두며 화려한 전성기를 누렸던 박찬호는 텍사스 레인저스와 FA 계약을 체결해 성공 시대를 열어갔다. 그러나 텍사스에선 기대와 달리 부상과 부진에 시달리면서 다저스 시절의 위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거듭되는 부상으로 인한 구속 저하와 새로운 변화구 장착 실패 등 변화의 기로에서 어려움을 호소했던 박찬호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자리를 옮기고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다.

박찬호는 '평범한 투수'로서 두 번째 FA 자격을 얻었고 마침 FA 시장엔 과열 현상이 두드러져 박찬호도 기대를 걸어봄직했으나 아직 그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는 팀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본인은 샌디에이고 잔류를 희망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무산될 처지에 놓여 있다.

어느덧 그의 나이는 우리 나이로 35세. 박찬호가 부활의 청신호를 울리기 위해선 하루 빨리 새로운 소속팀을 찾아야 한다. 안정감을 찾고 2007시즌을 대비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의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는 최고의 협상 능력을 가졌지만 박찬호는 이미 주요 고객 리스트에서 빠진 상태다. 한때는 책자까지 만들며 박찬호 홍보에 열을 올렸던 지난 2001년 겨울을 생각하면 더욱 아쉽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팬들은 박찬호가 늘 환희의 순간만 보여주길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그렇진 못했다. 늘 성공만 할 수 없는 것. 그게 바로 개척자의 운명이다.

팬들이 박찬호에 열광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메이저리그란 신천지에서 '개척자 정신'으로 거물급 타자들을 상대하는 모습은 오직 박찬호에게서만 볼 수 있었다. 어느 야구팬의 말에 의하면 다른 코리안 메이저리거에선 이런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한다. 때문에 야구팬들에게 박찬호는 특별한 의미로 남아 있다.

또다시 도전자의 길을 걷게 된 박찬호. 박찬호의 도전은 늘 새로운 것이었다. 늘 '한국인 최초'란 꼬리표를 달고 다니며 코리안 메이저리거의 역사를 하나 둘씩 쌓아 올렸다. 그런 그가 다시 출발을 한다. 박찬호만이 갖고 있는 개척자 정신이 발휘된다면 올 시즌을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박찬호의 '네 번째 유니폼' 색깔은?
내셔널리그팀 대부분 선발진 채운 상태...워싱턴, 세인트루이스, 애리조나 '후보 압축'

ⓒ샌디에이고파드리스
박찬호의 새로운 팀은 어디가 될까.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잔류가 희박한 가운데 팀을 옮길 처지에 놓인 박찬호는 아직 공식적인 러브콜이 없어 소속팀을 찾는데만 많은 시간을 소요하고 있다.

일단 금전적인 부분에선 욕심이 없다고 밝힌 박찬호는 야구를 잘 할 수 있는 환경을 중요시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내셔널리그(NL)에 잔류할 의사를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

그런 의미에선 LA 다저스 복귀가 좋아보이나 다저스는 이미 선발진 구성을 완료한 상태다.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발에 땀나도록 뛰어다닌 다저스는 제이슨 슈미트, 랜디 울프 등 FA 선발투수들을 차례로 영입했고 기존의 데릭 로우, 브래드 페니, 궈홍치(또는 채드 빌링슬리) 등과 선발로테이션을 완성시켰다. 같은 NL 서부지구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역시 배리 지토 영입을 마지막으로 선발진 구성을 끝마친 상태. 김병현이 있는 콜로라도 로키스는 유망주를 중용할 계획이며 박찬호 역시 쿠어스필드에서 던지는 것에 관심이 없다.

오히려 브랜든 웹-리반 에르난데스-덕 데이비스 외엔 확정된 선발이 없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나 선발투수 3명(제이슨 마퀴스, 제프 위버, 제프 수판)을 잃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좋아 보인다.

세인트루이스는 차선책으로 FA 시장에서 킵 웰스를 영입한 상태며 '신예' 앤서니 레이예스를 중용할 계획이다. 1~2자리가 빌 것으로 보이는 자리에 박찬호가 들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세인트루이스는 보통 투수들의 기량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전력이 있어 국내팬들의 관심을 사고 있다.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제이슨 제닝스를 트레이드로 영입하고 우디 윌리엄스를 데려와 남은 자리가 한 자리 정도에 불과하고 밀워키 브루어스 역시 제프 수판을 영입을 마지막으로 손을 뗀 상태. 시카고 컵스피츠버그 파이어리츠는 4-5선발을 두고 고만고만한 선발투수들이 많아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이런 부분에선 신시내티 레즈도 마찬가지.

토니 아마스 주니어와 라몬 오티즈가 FA로 풀려 선발진에 공백이 생긴 워싱턴 내셔널스도 후보에 포함될 수 있다. 현재 워싱턴의 선발진에 포함될 것으로 보이는 선수들 중 지난해 10승 이상을 거둔 선수는 아무도 없다. 워싱턴과 같은 NL 동부지구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플로리다 말린스, 필라델피아 필리스는 선발진 조각이 거의 끝난 상태며 뉴욕 메츠는 페드로 마르티네스의 부상으로 남은 한 자리를 유망주 마이크 펠프리로 채울지 아니면 베테랑 투수를 영입할지 고심 중이다.
2007-01-01 08:31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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